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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론새평-오정일] 버블, 시지프스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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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교수회 의장

버블은 과도한 수요로 인해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이 상당 기간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대가 또 다른 기대를 낳는다. 내가 사니까 남이 사고, 남이 사니까 내가 산다. 악순환이다. 아니, 선순환인가? 버블은 집단적인 착각이다. 실체가 없는 기만적 현상이다. 모든 버블이 이번에는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 말이 언제나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무역과 금융이 발달해서 부가 빠르게 쌓였다. 당시 '튤립'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거래는 구근(球根) 매매에서 선물(先物) 계약으로 확대됐다. 사람들은 '다음 사람이 더 비싸게 살 것'이라는 기대 만으로 거래에 나섰다. 어떤 품종은 그 값이 숙련 장인의 10~15년 치 연봉에 이르렀다. 1637년 한 경매에서 매수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자, 가격은 6주 만에 80~95% 폭락했다.

18세기 초 영국 정부가 '남해회사'를 설립했다. 남해회사는 국채를 인수하는 대가로 남미 무역독점권을 받았다. 남미는 이미 스페인 지배 아래 있었지만, 무역독점권은 사람들의 기대를 키웠다. 주가는 10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로 폭등했다. 1720년 무역독점권이 노예무역 허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갑자기 시장이 무너졌다. 아이작 뉴턴은 이렇게 말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狂氣)는 계산할 수 없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도 파산 위기에 몰렸다. 1717년 존 로가 '미시시피회사'를 세우고,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강 유역의 무역독점권을 받았다. 그는 신대륙에 거대한 부가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주가는 1년 만에 20배 올랐다. 1720년 루이지애나 실상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90% 이상 떨어졌다.

100년 전 조선에도 버블이 있었다. 1918년 일본에서 쌀 폭동이 발생했다. 쌀값이 3배 올랐다. 서울, 평양, 대구, 전주에 미곡거래소가 설치됐다. 선물거래도 빠르게 확산했다. 당시 서울 미곡거래소 하루 거래량은 1만 석을 넘어섰다. 미곡상(米穀商)들은 계약서 한 장 만으로 이익을 얻으려 했다. 일반 사람들도 중개인을 통해 선물거래에 뛰어들었다. 1921년 일본 경기가 꺾이면서 쌀값은 22원에서 6원으로 폭락했다. 이로 인한 손실은 조선 국내총생산의 3%에 해당했다.

버블의 바탕에는 인간 심리가 있다. 케인스는 시장을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사람들은 실제 가치가 높은 자산보다, 남들이 살 것 같은 자산을 선택한다. 기대가 기대를 자극하면 가격은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오른다. 이 기대가 금융기관의 대출 확대와 맞물리면 상승 압력은 더 강해진다. 공기를 넣으면 풍선이 커지듯, 대출이 늘면 버블도 커진다.

심리와 금융이 만들어낸 버블에는 늘 이야기가 붙는다. 자산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언론과 대중을 타고 퍼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시장에 뛰어든다. 가격이 오르면 그 이야기는 힘을 얻고, 힘을 얻은 이야기는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린다. 이런 식으로 튤립이, 주식이, 쌀이 번영의 상징이 됐다.

모든 버블은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심리가 대출을 부추기고 여기에 서사가 더해지면, 버블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자산 가격이 실제 가치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여긴다. 그 착각이 버블을 키우지만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터진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1920년대 미국이다. 이 시기 미국은 주식 시장 과열, 소비 확산, 도덕적 해이가 뒤섞여 있었다. 주인공 개츠비는 불법적인 사업으로 부를 쌓아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으려 하지만,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다. 저자 피츠제럴드는 이 번영이 탐욕과 도덕적 공허가 만든 허상임을 드러낸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물결을 거슬러 나아가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되밀려가면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버블이 터지면 잠깐 멈칫하지만, 곧 새로운 버블을 만든다. 이 비극적 반복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도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진다. 반복되는 버블은 시장이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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