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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진골목, 전 세대 아우르는 보금자리로 거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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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외형을 살린 상가와 카페들이 들어서며 젊은 골목으로 변신한 진골목. 주말이면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몰리며 노인과 청년이 공존하는 새로운 종로의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한옥 외형을 살린 상가와 카페들이 들어서며 젊은 골목으로 변신한 진골목. 주말이면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몰리며 노인과 청년이 공존하는 새로운 종로의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화려한 대로와 대로, 그 사이에는 혈관처럼 뻗은 골목들이 있다. 고유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골목들은 대구의 근현대 역사를 보여준다. 대구를 먹여 살리던 산업의 역사부터 일반 서민들의 애환까지. <골목을 걷다>는 화려한 대로변 뒤편, 가장 대구다운 풍경과 이야기를 재조명한다.〈편집자 주〉

진골목. '길다'는 의미의 경북 방언인 '질다'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 그대로 200m가량의 길고 좁은 길은 종로 한편에 있어 쉽게 찾기가 어렵다. 오랜만에 진골목을 찾은 이들은 골목 입구를 찾느라 진땀을 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종로 골목의 바닥을 살피면 된다. 진골목 입구임을 알리는 표시와 함께, 골목 안쪽 가게 이름이 나열된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안은 종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쉽게 보기 어려운 한옥이 좁은 골목 양쪽으로 자리 잡았다. 한옥을 두르는 담장은 성인 남성의 키보다 조금 큰 2m 남짓. 한옥을 쉽게 훔쳐보기 어려운 높은 담장은 한옥 주인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진골목이 낳은 거목

진골목은 예로부터 '부자 동네'로 불렸다. 1900년대 초 골목 일대는 달성 서씨의 집성촌으로, 서병국, 서병직, 서병기, 서병원, 서병규 등이 수백 평에 달하는 한옥을 소유했다. 지금은 잘게 쪼개어져 각기 다른 건물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달성 서씨의 손아귀에 있던 수백 평의 대궐이었다.

진골목은 한양, 중국과 일본까지 명성을 떨친 서화가를 배출했다. 석재 서병오 선생은 다재다능해 '영남이 낳은 천재'라는 극찬을 받았다. 시와 서화, 거문고, 바둑, 장기, 심지어 의약과 구변에도 능해 '팔능거사'라 불리기도 했다.

서 선생은 해외와의 교류를 통해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고, 서예교육과 후진 양성에 평생을 헌신했다. 서 선생의 명성을 좇아 서화인들이 대구로 모여들면서, 대구는 한때 우리나라 서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재산 전부를 투자해 개간 사업을 벌였다가, 홍수를 만나 사업에 실패한다. 그 영향으로 진골목 대저택을 모두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생가는 철거되고 현재는 '에비뉴8번가'가 들어서 있다. 건물 입구에 서 선생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와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달성 서씨들이 떠난 이후에도 진골목은 부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코오롱 창업자인 이원만 회장이 그중 하나다.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16살 때 부친을 잃는 등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은 이 회장은 혈혈단신으로 건너간 일본에서 모자(帽子)사업으로 큰돈을 만졌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 섬유산업을 이끌고, 한국을 수출 강국으로 키운 가발 산업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회장은 일본에서 벌어들인 떼돈으로 진골목에 대지 7백 평에 달하는 한옥을 구매했다. 당시 이 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한민당 인사들은 이곳을 사랑방으로 활용하며, 진골목을 자주 드나들었다. 특유의 호방한 성격과 뛰어난 화술은 정치인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이 회장은 민주당 참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6~7대 국회의원으로도 잇따라 당선됐다.

젊은 골목으로 변신한 진골목 카페를 찾은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젊은 골목으로 변신한 진골목 카페를 찾은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상업지로 탈바꿈

이후 요정과 음식점, 여관까지 들어서며 진골목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대저택은 점점 더 작고 잘게 쪼개졌고, 몇몇 건물은 한옥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수많은 가게들이 들어섰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몇몇 한옥은 진골목의 '터줏대감'이 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터줏대감들은 종로를 찾는 노인들의 쉼터가 됐다. 정겨운 향토음식을 파는 음식점 '송정'의 주인인 허명희(66)씨는 10년 이상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 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씨는 "기존 한옥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보니, '큰집 같다'며 가게를 찾아주시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와 비슷한 토속 음식점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카페가 대세다. 그럼에도 단골들은 송정을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변신, 젊은 진골목으로

허씨의 말대로, 진골목은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종로를 찾는 젊은 층들의 입맛에 맞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카페는 무려 8곳에 달한다.

새 건물은 기존 한옥과 이질적이지 않도록 나름의 노하우를 뽐냈다. 평범한 2층 상가 건물이지만, 1층 건물의 외형은 한옥처럼 꾸몄다. 한옥을 닮은 차양 위에 기와를 얹고, 벽에는 황토를 발라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다. 도보로 이동하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계다.

진골목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자랑하다 보니, 작고 특색있는 카페가 자리를 잡기 안성맞춤이다. 송도완(39)씨 역시 그중 하나다. 송씨는 지난 2023년부터 한옥을 닮은 1층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송씨는 "최근에 카페 골목으로 부흥하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는 관광객으로, 점심시간에는 커피를 찾는 직장인으로 진골목이 북적인다"고 했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고 해서, 노인들이 찾기에 껄끄러운 공간이 된 걸까. 송씨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송씨는 "미도다방이 꽉 찼을 때는 어르신들도 주변 작은 카페를 찾는다"며 "예전보다 진골목을 찾아주는 이들의 나이대가 다양해졌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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