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묵죽화가인 수운(峀雲) 유덕장이 1753년 여름날 그린 대나무 그림이다. 시원하게 여름을 잘 나시라고 흰 눈이 쌓인 설죽이 있는 한겨울 풍경을 어느 분께 그려 드렸다.
'설죽'은 묵죽이 아니라 녹죽(綠竹)인 설죽인 점, 둔덕과 바위, 난초 등이 더해져 산수화 같은 대나무 그림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영조 때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관아재 조영석의 풍속화 등이 나타나며 회화가 새롭게 확장되던 시기라 대나무 그림에도 이런 변화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대나무 그림은 묵죽이었고 주변이 생략된 채 기후적 요소가 더해질 뿐이었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의 설죽을 비롯해 바람, 비, 이슬, 서리, 안개, 달 등이 대나무와 짝하는 풍죽(風竹), 우죽(雨竹), 노죽(露竹), 상죽(霜竹), 연죽(煙竹), 월죽(月竹) 등으로 그려지며 홀로 올곧은 자태를 표현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
유덕장은 앞 시대의 대가인 탄은 이정(1554~1626)의 묵죽을 계승하면서도 겨울의 공기가 느껴지는 대밭의 정경을 다채롭게 구성하며 부드러운 필치로 대나무의 정취를 드러냈다. 유덕장의 묵죽화를 즐겨 감상한 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 혜환 이용휴(1708~1782)는 "이정의 대나무 그림은 호방하고 빼어나며 무성하고 장대하여 세(勢)로 뛰어나고, 유덕장의 대나무 그림은 맑고 윤택하며 흩어지고 비어서 운(韻)으로 뛰어나다"라고 각자의 장점으로 비평했다.
묵죽은 대나무처럼 곧고 늘 푸르기를 다짐하는 군자의 수신(修身)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묵죽화는 회화의 한 원형으로서 조선시대 내내 중요하게 여겨졌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도화서 화원을 뽑을 때 죽을 1등, 산수를 2등, 인물과 영모를 3등, 화초를 4등으로 정해놓고 이중 두 과목을 선택하게 했다. 화원화가의 경우도 대나무 그림 실력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수신은 조선 지식층의 최상위 과제였다. 사군자를 비롯해 그림에도, 잠명(箴銘) 등의 글에도, 서재 이름인 헌호(軒號)에도 수신의 뜻을 담았다. 서재 이름을 당일헌(當日軒)이라고 한 어떤 이에게 이용휴는 이런 기문을 지어줬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다만 오늘이 있을 뿐이다. ... 지금 신군(申君)이 수신하고자 하니 그 공부는 오직 오늘에 달려있다. 그러니 내일을 말하지 말라. 아! 수신하지 않는 날은 곧 없는 날과 마찬가지니 이는 바로 헛된 날(空日)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확실한 이 하루를 공일로 만들지 말고 당일(當日)로 만들라.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 ... 今申君欲修者 其工夫惟在當日 來日則不言 噫 不修之日 乃與未生同 卽空日也 君須以眼前之昭昭者 不爲空日而爲當日也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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