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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0년,격동 80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조인…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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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모습. 왼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이고, 오른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다. 국가기록원 제공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모습. 왼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이고, 오른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다. 국가기록원 제공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조인됐다. 이날 오후 10시를 기해 전투는 중지됐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1개월 2일 만이었다.

◆ 판문점에서 멈춘 총성

한국전 휴전을 위한 회담은 전쟁발발 이듬해인 1951년 7월 10일 시작됐다. 이후 무기휴회 상태로 교착에 빠졌던 휴전협상이 진전을 보인 계기는 1953년 3월 15일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이후 공산군 측은 부상병 포로의 우선 교환에 동의하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전협정에는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과 북한·중국 공산군 측 대표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이 서명했다. 이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펑더화이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이 각각 협정문에 서명하면서 한반도 전선의 총성이 멎었다.

정전협정문은 영어·한국어·중국어로 작성된 18통의 문서로 구성됐다.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각각 9통씩 보관했다. 미 국방부는 이 협정이 2년 17일간, 총 158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타결된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1953년 8월8일 서울에서 정전협정 전후 추진해왔던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 서명식이 열렸다. 국가기록원 제공
1953년 8월8일 서울에서 정전협정 전후 추진해왔던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 서명식이 열렸다. 국가기록원 제공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휴전 이후에도 한국 방위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정전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미국은 군사적 부담과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정치적 비용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1953년 4월 12일 성명을 통해 휴전 반대와 단독 북진을 주장했다. 국회 역시 4월 21일 북진통일 결의안을 채택했다.

6월 8일 포로교환협정이 체결되자, 다음 날부터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6월 18일 반공포로 2만7천 명을 전격 석방하며 미국을 놀라게 했다. 이는 정전협상에 중대한 변수가 됐다.

사태 수습을 위해 6월 22일 이승만 대통령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회담을 가졌다. 협상이 교착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로버트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연내에 체결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결국 7월 24일 한국 정부의 정전협정 동의를 이끌어냈다.

1953년 10월 1일 한·미 간에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되었으며, 상호방위를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한국이 외국과 맺은 유일한 동맹조약이다.

매일신문 1953년 6월16일자 1면 톱기사. 한국의 휴전이 임박하였다는 감을 주는 이때 미 제8군사령부 테일러 장군은 휘하 장병에 대하여
매일신문 1953년 6월16일자 1면 톱기사. 한국의 휴전이 임박하였다는 감을 주는 이때 미 제8군사령부 테일러 장군은 휘하 장병에 대하여 "휴전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투의 중지'를 말한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매일신문DB

◆ 16개국이 참전한 전쟁

한국전쟁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다. 유엔군 전투병력을 파견한 국가는 미국을 포함해 16개국, 의료지원을 제공한 국가는 5개국이다. 물자 지원국까지 포함하면 한국 국방부는 총 63개국이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유엔군 전체 사망자는 5만4천246명으로 집계됐다.

미 국방부와 보훈부에 따르면 연인원 기준으로 미군 178만9천 명이 참전했다. 이 가운데 전사자는 3만3천739명, 비전투 사망자 2천835명을 포함해 총 사망자는 3만6천574명에 달했다. 부상자는 10만3천284명이었다.

미국과 유엔군은 중공군 사망자를 약 40만 명, 부상자를 48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오후 1시 문산 유엔 기지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953년 7월 27일 오후 1시 문산 유엔 기지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인구 10분의 1이 사라졌다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이었다. 한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군 전사자는 14만7천899명, 부상자는 약 45만 명, 실종자와 포로는 3만2천여 명에 달했다. 민간인 사망자는 24만여 명, 양민 학살로 숨진 인원은 12만8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민간인 실종자는 30만 명을 넘는다.

군사정전위원회 편람에 따르면 북한군은 사망자 52만여 명, 실종자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북한 지역 민간인 사망자는 28만여 명, 실종자는 79만 명에 달한다.

미 통계청이 밝힌 당시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전쟁 발발 당시 남한 인구는 2천40만 명, 북한은 970만 명이었다. 남북한 인구의 약 10분의 1이 전쟁으로 희생된 셈이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평화조약이 아니었다. 38선은 군사분계선으로 고착됐고, 한반도 분단 구조를 유지하는 틀로 작동해 왔다.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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