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는 대학생이던 1991년 재즈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 멤버로 데뷔했다. 그러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철과 함께 영화 '그대 안의 블루'(1992)의 동명의 주제가를 불러 주목 받았다. 이소라를 눈여겨 본 김현철은 또다른 싱어송라이터 조규찬, 낯선 사람들을 이끌었던 고찬용과 함께 3인 프로듀싱 체제로 이소라의 1집 'Lee So Ra Vol.1'(1995)을 만들었다.
이 음반은 100만장 이상 팔렸다. 당시 여자 솔로 가수 최다 판매 앨범 기록을 썼다. 가장 유명한 곡은 김현철이 만든 타이틀곡 '난 행복해'다. 증권맨 출신 뮤지션 김광진이 곡을 준 '처음 느낌 그대로'도 유명하다. 이문세와 듀엣으로 부른 '잊지 말기로 해'도 빼놓을 수 없다. 수록곡은 모두 9곡.
이소라는 2집부터는 직접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기 때문에, 이 앨범은 이소라의 이후 음악세계를 열어준 주춧돌인 셈이다. 그런 의미를 강조한듯 이소라는 음반 속지에서 이런 감사의 말을 풀어냈다. "내가 노래할 수 있게 해 준 찬용이와 노래는 절제라는 걸 알게 해 준 규찬이와 나도 모르던 내 목소리를 찾아내준 현철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가수라면 이런 제작자, 작곡가, 프로듀서를 꼭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가수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를 가리키는 표현 아닐까.
이 말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게 CD 겉면에 새겨진 달 하나와 별 셋 그림이다. 마치 동방박사 3인(별 셋, 김현철·조규찬·고찬용)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운명처럼 찾아온 보컬리스트 이소라(달 하나)의 만남을 표현한듯 하다. 가요계에서 먼저 입지를 다져 빛나고 있던 세 뮤지션(별)이 자신들과 결이 좀 다른 빛을 내고 있던 이소라(달)를 막 발견해 만나러 가던 시점을 그린듯 하다. 물론, 공식 설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측.
우리말 성서에 동방박사로 번역된 헬라어 마구스(마기)는 마술사를 의미한다. 높은 작품성을 갖춘 것은 물론, 흥행도 크게 성공한 앨범을 만들어냈으니 김현철·조규찬·고찬용, 이 세 사람은 그때 우리 가요계에서 마술 같은 활약을 했다고 할 만하다. 달은 이후 이소라의 6집 '눈썹달(2004)'의 제목이자 앨범 커버 이미지로 재등장했다. 사실 이소라의 노래들 중 달의 차가운 온도, 은은한 분위기, 외로움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적잖다.
이 앨범을 발매한 레이블 '동아기획'도 함께 주목해보자. 동아기획의 족적을 분석한 책 '동아기획 이야기'(이소진 저, 2025)에 따르면 이소라는 동아기획표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고 브랜드도 강화한 일종의 '추천' 시스템의 결실이었다. 김현식이 자신의 세션 밴드이기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빛과 소금을, 전인권(들국화)은 하덕규(시인과 촌장)를, 하덕규는 장필순을, 최성원(들국화)은 박학기를, 조동익(어떤날)은 김현철을 추천하며 앨범 발매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김현철이 이소라를 추천했다.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견인한 동아기획표 음악의 특징은 그저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닌 적극적인 창작자들을 내세운 것이고, 이에 매료돼 팬덤이 된 대중들은 출시일을 손에 꼽아 기다려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아가 환호했다.
이소라도 그 유전자를 이어받았고, 마침 1집의 흥행 성공과 함께 스타로 발돋움한 이소라의 영향력은 실력으로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펼쳐야 인정 받는, 눈높이가 제법 올라간 지금의 대중음악 환경을 만드는 데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이소라는 1집 이후 발라드만 부른 게 아니라 원래 구사했던 재즈부터 포크와 록까지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며 실험적인 스타일의 음악도 꾸준히 시도했는데, 이 역시 뮤지션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한국 가요계 풍토 형성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90년대에 등장한 이소라는 20세기 동아기획이 보여준 미덕을 21세기 대한민국 대중가요 씬으로 전달한 뮤지션 중 하나다. 그때 서태지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소라의 1집 앨범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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