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국악인.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작은 거인' 가수 김수철이 화가로 데뷔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 '김수철의 소리그림'을 통해서다.
첫 개인전인데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에서, 500호 대작을 포함해 무려 100여 점을 내보이는 상당한 규모다. 작품들이 자기 복제나 천편일률적인 형태도 아니다. 각 주제마다 품고 있는 세계가 뚜렷하고 확실하다. 그의 그림을 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화를 배운 적 없는 순수함 그 자체이자, 완성도가 높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이 정도면 과연 타고난 '천재 예술가'가 아닐까.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기자의 감탄에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천재라고요? 저는 순수 노력파예요. 이 모든 건 노력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남들 놀 때 안 놀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는 것. 30여 년 간 꾸준히 그려온 것들 중 일부를 전시한 '그림일기' 작품은 그 방증이다. 다양한 색의 물감을 바르고 문지르며 뿌려낸 작품들은 그가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다.
그는 "원래 글로 일기를 쓰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져서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스케치북이나 탁상달력 뒷면에 그날의 느낌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아주 자유롭고 외향적인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수십년 간 여름 휴가 한 번 간 적 없어요. 지난해 중국 상해미술관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24년 만에 처음 해외에 나간거였죠. 작곡이 끝나면 그림에 몰두하고, 또 음악을 합니다. 술·담배는 이미 30년 전에 끊었고, 내 생활은 온통 작업으로 돼있죠.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했던 작업의 10분의 1 정도만 선보이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는 무대 위 폴짝폴짝 뛰는 모습으로 익숙하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정신차려', '치키치키차카차카' 등의 노래로 80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을 담당했고 국악인이자 영화음악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춘 예술인이다. 2023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수로 먼저 알려졌을 뿐, 그림은 언제나 그와 함께였다.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그림을 좋아하고 계속 그려왔지만, 이후 갑자기 음악에 빠지면서 그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 작곡이 끝나면 스케치를 하던 것이 그림일기로 발전했고, 코로나 팬데믹 당시 큰 작업으로 확장됐다.
그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의 주제는 '소리그림'. 천지만물의 소리부터 인간 삶 속의 소리, 우주의 소리, 적멸(寂滅)의 소리 너머 소리까지 김수철만의 회화 언어로 풀어냈다.
그는 "내가 그린 소리는, 형태가 있는 음악이 아니라 인생을 담은 살아있는 소리"라며 "바쁜 삶에 못 듣고 지나치는 소리를 골똘히 듣고, 다시금 건드려 깨닫도록 동기를 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색의 조화와 에너지, 나에게 들리는 소리가 내 그림의 3요소"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지식이나 상식, 보편타당한 내용이 아닌 것들에 대한 얘기다. 이를테면 보통의 흑백 수묵화와 달리, 김수철의 수묵화는 붉고 파란 색으로 그려졌다. 중요한 것은 물감의 농도. 작품마다 다른 농도의 물감은 때로는 바다를, 때로는 빛을 담고 있다.
우주에 놀러 갔을 때 혹은 행성 가까이 갔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들도 흥미롭다. 그는 "몸은 거의 작업실에만 갇혀있지만, 오히려 정신으로는 몸이 갈 수 있는 곳을 넘어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주는 꼭 나의 상상력만을 펼쳐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오만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보면 먼지 같은 존재들끼리 서로 잘난체하고, 욕심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그 업보를 다시 돌려받는 것에 대한 얘기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확장돼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전시는 자화상으로 시작해 자화상으로 끝난다. 특히 출구 앞에 걸린 자화상은 사방팔방을 가리킨 화살표들이 눈에 띈다. 작가는 "마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내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며 웃었다.
내년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는 "돈 안되는 음악을 많이 했지만, 돈은 깨달음을 못준다. 대중은 진실되지 않은 것에 반응하지 않는다. 작곡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건강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라며 "그걸 통해 극소수라도 위로를 받는다면 그걸로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50주년을 앞두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 소감을 묻자 그에게 '역시 김수철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전 뒤를 안돌아봅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며, 항상 내일의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죠.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어제의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갑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죠. 이번 전시도 관람객들이 그림을 보도 재미 있었다, 힐링이 됐다고 하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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