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벗고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빼 주세요."
지난 3월 11일 오후,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일본 도쿄발 여객기가 착륙한 직후였다. 예고 없던 검색대가 놓였다. 승객 180명이 일제히 멈칫했다. 항공사에도 알리지 않은 불시 검사였다. 세관은 중국·대만·일본 노선을 중심으로 무작위 단속을 벌인다.
세관 직원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수하물 하나하나가 X선을 통과했다. 통합판독실에서는 전문판독관이 '매의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은닉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이중·삼중 교차 판독은 일상이 됐다. 약품도 표적이었다. "약 가진 거 있어요? 마약 성분이 든 약품도 단속 대상입니다." 가방 속 다량의 약품이 포착되면 그 자리에서 개봉해 확인했다.
이날 30대 남성이 걸렸다. 우범여행자로 분류돼 밀리미터파 신변 검색기 앞에 섰다. 쇼핑백 안에 휴지로 둘둘 만 합성 마약 엑스터시(MDMA) 10정이 들어 있었다.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됐다.
지난 14일에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30대 여성이 약에 취해 누워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여성이 넘어지면서 함께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는 프로포폴 병과 주사기가 쏟아졌다.이 여성은 인근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과거 특정 계층의 일탈로 여겨지던 마약 범죄는 이제 평범한 직장인, 주부, 그리고 10대 청소년의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이미 통제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 투약'을 넘어 유통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SNS와 다크웹, 가상화폐를 이용한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누구나 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단속과 처벌뿐만 아니라, 중독자를 환자로 인식하고 치료·재활을 돕는 통합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마약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국 하수도에 필로폰이 흐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 34곳을 조사한 결과,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이 2020년 이후 5년 연속 필로폰이 검출됐다. 특정 지역의 일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는 뜻이다.
◆ 감정 건수 7년 새 3배
행정안전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지난 4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5'에 따르면, 2025년 마약류 감정 건수는 소변 2만 6,350건, 모발 3만 5,993건, 압수품 7만 8,432건 등 모두 14만 775건.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18년 약 4만 3,000건이었던 감정 건수가 2024년 약 12만 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14만 건을 넘어섰다. 7년 사이 3배를 훌쩍 넘긴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마약 사범을 잡아 수사하면서 국과수에 보내는 감정 의뢰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마약 단속이 강해진 게 아니다. 마약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수사의 초점도 바뀌었다. 투약자 적발 시 이뤄지는 소변·모발 감정 비중은 2018년 71%에서 지난해 55%로 줄었다. 반면 유통책 검거 때 의뢰되는 압수품 감정은 29%에서 45%로 뛰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단순 투약자를 넘어 유통책 검거와 공급 경로 차단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중 신종 마약류 비율은 2019년 10% 미만에서 2024년 35%로 5년 만에 3.5배 이상 뛰었다. 여전히 압수품의 52.7%는 필로폰이지만, 환각 효과가 강한 합성대마류(15.1%)와 케타민(10.6%)이 주요 남용 물질로 떠올랐다.
◆ 전자담배인 줄 알았는데, 합성대마였다
합성대마를 담은 전자담배 카트리지는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와 겉모습이 똑같다. 냄새도, 연기 색깔도 다르지 않다. 속칭 '브액'으로 불리는 이 액상형 합성대마가 청소년 마약 유입의 관문이 됐다.
지난해 10대의 합성대마 남용은 364건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10대 압수 마약 중 합성대마 비율(37.8%)은 필로폰(40.4%)에 육박했다. 10대 청소년에게 합성대마는 이미 필로폰만큼 가까운 마약이다.
20~30대는 더 위험하다. 필로폰을 기본으로 깔고 MDMA(엑스터시)·케타민·합성대마를 섞어 쓰는 중복 투약이 늘고 있다. 중독 속도가 빠르고 부작용이 예측하기 어렵다. 치료도 훨씬 복잡해진다. 지난해 필로폰 중독 사망은 33건. 중복 투약에 따른 복합 독성 사망도 잇따른다. 수면마취제 규제가 강화되자 동물용 마취제 '메데토미딘'이 불법 유통되는 풍선효과까지 확인됐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마약 사범은 2014년 1,378명에서 지난해 6,463명으로 10년 새 4.7배 늘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3.8%에서 28.1%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처음엔 병원에서 시작됐다. 성형수술 마취제 프로포폴, ADHD 치료제 오남용. 합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강한 마약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여성 중독자 급증의 경로다. 한 중독 치료 전문가는 "여성 마약은 음지에 숨습니다. 가족에게 들킬까 봐 혼자 견디다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발견됩니다. 발견이 늦으면 치료도 늦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마약이 강력범죄로 이어져
더 센 마약이 들어오고 있다. 코카인, 합성 아편류(플루오로펜타닐 등) 등 고위험 약물 적발이 늘고 있다. 수술실 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도 의료계 밖으로 흘러나와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국과수 감정에서 포착되고 있다.
플루오로펜타닐은 미국에서 수만 명을 사망으로 몰아넣은 펜타닐의 유사체다. 분자 구조를 미세하게 변형해 규제를 피한다.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이다. 일반 마약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약은 강력범죄로 연결된다. 필로폰을 투약하고 교통사고를 낸 사례, 합성대마를 흡입한 채 항공기에서 난동을 부린 사례, 마약 환각 상태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수사 기록에 쌓이고 있다. 투약 후 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예측하기 어렵다. 반응 시간과 판단 능력의 손상이 알코올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약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북·제주·강원·충북·충남·대전·세종·전남·광주·울산 등 전국 12개 시도 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에 마약 수사 전담팀을 단 한 곳도 운영하지 않는다.
광역 경찰청 단위의 마약 수사팀이 있지만 일선 경찰서 전담팀 부재는 지역 단위 대응력의 공백이다. 대구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마약팀은 없다. 하지만 단순 사건은 일반 형사팀이 처리하고, 큰 건은 시경 마약범죄수사계와 협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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