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조선시대 전란이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를 기록한 '징비록'과 '간양록'을 통해 오늘의 안보와 공동체 책임을 되새기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임진왜란기 조선의 일본 정보 수집과 전쟁 기록의 의미를 조명한다.
특히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과 강항(姜沆·1567~1618)의 '간양록'(看羊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경험 속에서 정보의 부족과 정세 판단의 한계가 국가 방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방에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통신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해외 정보를 얻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명나라는 국초 이후 해금(海禁)을 기조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은 공식 사신 파견이나 최부(崔溥·1454~1504)처럼 표류했다가 귀환한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제한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대한 정보 역시 기본적으로 쓰시마(對馬)를 통해 파악해야 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조선·명·일본의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직접 대면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3국 사이의 정보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1590년 일본에 파견된 경인통신사가 돌아온 뒤,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의 의도를 둘러싸고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군대를 이끌고 대명으로 넘어 들어간다"라고 언급했다는 보고는 조선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다. 조선은 논의 끝에 이 사실을 명 조정에 알리기로 했다.
'징비록'은 당시 동아시아 정보 네트워크와 그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명 조정은 일본에 붙잡혀 있던 복건 사람 허의후(許儀後)를 통해 일본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고, 류큐(琉球)에서도 세자를 명에 파견해 일본 관련 소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일본의 조선·명 침략 가능성은 전쟁 이전부터 동아시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보가 있었다고 해서 정확한 대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중국 광동·복건 지방에 히데요시가 중국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가정제(嘉靖帝) 시기 중국 남동부를 어지럽힌 왜구와 관련이 있으며, 명나라 사람으로 규슈 히라도(平戸)를 근거지로 활동한 왕직(王直)의 사례와도 이어진다.
조선 역시 15만 명이 넘는 일본군의 대규모 침공과 경상도 방면 침공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다. 이는 정보 부족과 정세 판단의 한계가 국가 방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이들을 '피로인'(被擄人)이라 부른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삼평(李參平)처럼 일본에 정착한 인물도 있었고, 고난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귀환한 피로인들이 전한 일본의 정치·군사·사회 정보는 조선의 대일 정책을 재정비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그중에서도 강항의 '간양록'은 내용이 상세해 조선 조정이 전후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강항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련된 일본군 다이묘들의 이력을 정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같은 유력 다이묘는 물론, 다테(伊達), 사타케(佐竹), 모가미(最上) 등 당시 조선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던 도호쿠(東北) 지방 다이묘에 대한 정보까지 '간양록'에 남아 있다.
강항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순수좌(蕣首座)라는 법명의 승려와 교류했는데, 그가 바로 후일 일본 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이다.
강항은 그에게 조선의 과거 제도와 석전 등을 알려주었고, 이는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조선의 학문과 기록문화가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만들어낸 사례가 됐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조선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나라를 지키는 일이 군사력만의 문제가 아님을 일깨웠다.
정확한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냉철하게 판단하며, 위기를 예견해 대비하는 일은 호국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조선은 전란 이후 통신사를 부활시키고, 역관을 정사로 하는 문위행(問慰行)을 쓰시마에 파견해 외교 교섭과 정보 수집의 기회를 넓히고자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호국보훈의 달에 '징비록'과 '간양록'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라며 "전란의 기록은 호국의 근본이 기억과 추모뿐 아니라 정보, 판단, 대비에 있음을 일깨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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