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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전종훈] 자란 풀 앞에서 마주한 '끝나지 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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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탄 묘역, 가족이 직접 나선 복구 작업
자연은 푸르러졌지만 주민의 상처는 그대로
끝나지 않은 산불…지속 가능한 맞춤형 지원 절실

전종훈 사회2부 차장
전종훈 사회2부 차장

지난해 3월 경북 북부를 휩쓴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여가 흘렀다. 불길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집과 산림은 물론 조상의 묘까지 잿더미로 변한 이들에게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삶의 뿌리를 뒤흔든 상처였다. 올해 추석을 앞둔 지금도 피해 지역의 복구는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안동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기자의 부친 묘소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30년 넘게 묘역을 지켜온 소나무와 잣나무는 흔적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까맣게 타버렸고, 익숙했던 묘역의 풍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3월 당시 산불 피해를 입은 안동시 길안면 기자 부친의 묘소. 전종훈 기자
지난해 3월 당시 산불 피해를 입은 안동시 길안면 기자 부친의 묘소. 전종훈 기자

산불이 잦아든 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불에 탄 나무들이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무를 정리하기 위해 안동시에 문의했지만 "직접 베고 처리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설 벌목업체들 역시 역대급 산불 이후 밀려든 작업을 감당하지 못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대전에 사는 형이 시간을 내 내려왔고, 인근에 사는 형의 친구가 전기톱을 구해 왔다. 기자를 포함한 세 사람은 하루 종일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막상 작업을 시작해 보니 불에 탄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와는 전혀 달랐다. 수분이 모두 빠져 숯처럼 변한 나무는 전기톱 체인을 순식간에 달아오르게 했고, 작업 도중 체인이 세 차례나 끊어질 정도였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얼굴과 옷은 숯가루로 새까맣게 변했다. 힘겨운 작업 끝에 묘역을 정리한 뒤에는 모두 타버린 잔디를 대신해 잔디 씨를 뿌렸다.

이 같은 경험은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안동과 의성, 청송, 영양, 영덕 등 산불 피해 지역 곳곳에서는 지금도 비슷한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조상을 정성껏 모시는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묘소 훼손 자체가 주민들에게 큰 정신적 상실감으로 남아 있다.

올해 추석은 9월 말이다. 올해만큼은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해 최근 기대를 품고 다시 묘소를 찾았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불에 탄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성인 키만큼 자란 잡초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지난해 뿌린 잔디는 다행히 뿌리를 내렸지만, 벌초를 하지 않으면 묘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폐허가 된 땅에서도 자연은 다시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회복 속도와 달리 사람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재민들은 집과 농지,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가 모두 회복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관심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산불로 폐허가 된 청송군 청송읍 달기약수터 입구 마을의 모습. 전종훈 기자
지난해 3월 당시 산불로 폐허가 된 청송군 청송읍 달기약수터 입구 마을의 모습. 전종훈 기자

산불 직후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각계각층의 지원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피해 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재난 지원은 피해 직후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 피해 규모가 크고 회복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주민들에게는 보다 두텁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획일적인 지원보다 피해 정도와 생활 여건을 세밀하게 반영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때 비로소 이재민들은 조금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산불은 진화됐지만, 피해 주민들의 삶을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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