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리뷰]두산아트센터 본주 작·연출의〈갱更〉'이미지의 수사만 가득한 모호한 생존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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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김건표 대경대연극영화과교수 (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연극영화과교수 (연극평론가)

<갱更> 은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본주 작·연출의 작품이다. '갱(更)'은 갱년기의 의미다. 그런 만큼 연극은 인간의 노동과 몸, 생존에 주목한다. 노동해야 하는 몸, 생존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몸, 전쟁을 겪고 가족부양을 위해 헌신해온 한쪽 팔이 부서진 몸, 세대에 따라 변화되어온 노동과 몸이다.<갱 更〉에서 '갱'은 갱년기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의 특정한 시기를 넘어 노동과 생존의 과정에서 인간의 몸이 끊임없이 변화해온 시간이다. 그런 만큼 본주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생존을 위한 노동과 몸은 갱년기를 겪은 인간의 몸만은 아닌듯하다. 한국 사회 역시 전쟁과 격동의 산업화를 겪고, 1980년대 민주화의 시간을 거쳐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왔고, 베이비붐 세대를 지나 88만 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MZ세대와 디지털 세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역시 끊임없이 이전의 몸을 벗고 다른 몸으로 변화해온 '갱(更)의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대별 노동의 몸과 시선,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갱(更)의 시간

본주는 이러한 변화의 시간 속에서 세대에 따라 달라져 온 노동과 몸, 그리고 '갱'의 변화를 직감하고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조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대는 마치〈한식대첩〉의 스튜디오나 세계적인 쉐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영화를 연상시키는 차가운 알루미늄 조리대가 놓인 대형 주방을 사실감 있게 공간화했고 배치의 구도도 적절해 보인다. '본주는 왜 갱의 공간을 차갑게 감각되는 현대적인 조리실을 배경의 공간으로 특정했을까.' 유추해 보면, 조리공간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식욕성이 생존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구조적 모형으로 본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을 통해 인간은 생존하며, 그 과정에서 세대와 몸은, 노동의 차이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갱'(更)의 조리실 공간은 인간의 노동과 생존이 반복되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기능 되는 메타포로 형상화한 것 같다.

중앙으로 긴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놓여 있고, 그 아래와 주변에는 대형 솥과 냄비, 스테인리스 볼, 식재료 용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작업대에는 칼을 비롯해 국자, 집게, 뒤집개 등 각종 조리도구와 집기들이 실제 주방처럼 촘촘하게 배치된 도시락을 조리하고 포장하는 극 중 인물 피영(공상아 분)이 운영하는 청년창업 도시락 조리실이다. 조리도구들은 생존을 위해 자르고, 썰고, 끓이고, 옮기는 반복적인 노동의 행위로 발화되는 오브제들이다. 윙윙거리는 환풍구, 씻겨내야만 제 빛깔이 되는 바닥 타일, 그 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 반사되는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로 된 조리기구들은 삶의 온기보다는 차가운 금속성을 드러내며, 노동을 위해 몸이 견뎌야 하는 생존의 전쟁터처럼 보이게 한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시각적 이미지 수사만 채워진 공간과 연출구도

촬영 카메라 한 대가 조리실 안을 움직이며 영화적 미장센 구도처럼 극의 분위기를 설정하고 자극하는 이미지의 각도를 만들어내는 것도 꽤 괜찮다. 실제 조리실처럼 음식 재료를 직접 시각화하지 않지만, 배우들이 무언가를 자르고 썰고 맛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표정과 몸의 극대화를 통해 조리실의 일상성을 몸으로 감각하게 한다던가, 극 중인들의 세대의 층의 혹은 그 시간의 층위 사이에서 감각될 수 있는 극 중 인물들의 소리, 톤, 음성의 질감들도 대비감을 부여해 각 인물의 세대 차를 소리의 특징으로 부여한다. 여기에 실제 음식이 조리되고 있듯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까지 미세하게 감각시키는 효과를 부여한다.

이러한 설정이 연출의 의도라면, 관객은 조리실을 단순히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의 온도와 냄새, 반복되는 노동의 감각까지 체감하게 되는데 본주 연출의 공간적 연출, 인물의 구도, 의상이나 세트디자인, 소리로 포획해내는 사운드나 이미지들은 노동과 몸, 세대, 시간으로 집약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감각은 발달되어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 갱更으로 연결되는 연출적 아이디어도, 세대, 몸, 노동으로 관통되는 특징을 적절하게 있어 보인다. 프로시니엄 무대 형식을 벗어나 중앙에 조리공간을 두고 앞뒤로 관객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객석을 구조화한 것.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조리실이라는 생존의 링'을 관찰하게 하는 공간 구도와 무대의 전경은 현대적이면서도, 차가운 금속성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강렬한 시각성을 보여주는 구도도 적절해 보인다. 아쉽게도 창작자가 작가로, 연출로 이번 갱(更)으로 애써 의미를 부여한다면 여기까지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조리실, 노동, 몸과 세대의 이질적 부조화

본주 연출은 이러한 분위기의 공간에 서사 층을 '가족'. '세대'로 전환해 다층화하면서 균열 감을 보이는데, 조리실과 극 중 인물에게 부여한 노동과 몸, 시간적 층위들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조리실 공간으로 포개지는 극 중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 속에서 본주가 형상화하는 이미지들이 극으로 쌓이지 않고 부조화된 이질적 전경을 만든다. 화려한〈한식대첩〉의 조리 퍼포먼스에 노동, 산재, 몸, 세대를 표상하는 극 중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마치 베스트셀러극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공간 구도는 현대적이고 이미지는 영화적이며, 다소 통속적인 서사를 몽타주적 장면 구성으로 감각적으로 전환하려는 연출적 의도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현대적인 감성으로 형상화하려는 연출적 의도가 극으로 안착되지 못해 시각적 이미지만 강조된다고 할까. 이 지점에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한쪽 팔을 잃고 보상금을 받은 70대인데도 여전히 또렷한 경상도 말씨와 위계적인 가부장성을 드러내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 그때 그 시절' 향수에 젖어 있는 보릿고개를 넘고 자란 천태(조하석 분)를 바라보는 손녀 피영의 내면 속 자의식 서사는 마치 조리실에서 분쇄되어야 할 돼지의 육체처럼 천태의 몸을 식육화 하는 잔혹한 환영으로 교차하기도 한다.

극 중 인물들은 해방둥이로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천태를 중심으로, 위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60대 금옥, 밀레니얼 세대이면서 40대인 피영과 도시락 사업체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친구 몽고(강혜련 분), MZ세대로 30대인 계약직 노동자 바리(이주협 분), 아르바이트 환경조차 디지털 플랫폼(유튜브)을 통해 소비하는 20대 도로시(곽영현 분)까지 조리실을 중심으로 도시락 업체를 구성하는 세대들이다. 그런 만큼 조리실은 5대에 걸친 서로 다른 세대가 뒤엉켜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여기에 본주 연출은 아버지의 위계적 폭력성 속에서 성장한 베이비붐 세대의 엄마 금옥(김은희 분)과 시간적 관계를 연결해, 피영 세대까지 이어지는 엄마의 몸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와 세대별 노동의 몸, 그 변화의 시간을 연결한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응답할 수 없는 세대의 노동과 몸

첫 장면은 '갱(更)'으로 인한 시간과 연령,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몸을 특정하듯, 갱년기로 몸 상태가 망가진 피영이 도시락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피영은 조리실에 등장해 알루미늄 조리대를 한 뼘, 한 뼘 닦고 소독한다. 때로는 일상적인 움직임과 대사의 진동보다 시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듯한 느린 움직임과 대화의 소리, 몽환적인 시각 이미지들이 비일상적으로 교차되면서도 때로는 도시락을 만드는 평범한 조리실 분위기이다. 피영과 천태가 스쳐 가는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어린시절 장애인 딸로 살아가게 할 수 없다며 양부모에게 보낸 아버지 천태의 보상금 1억3천만 원 통장을 금옥이 받으면서 조리실은 아버지 부양까지 해결해야 하는 공생의 공간이 되고 도시락 업체 운영은 어렵지만, 그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갈등을 보이는 피영은 천태를 향해 "노인네의 쓸모없어진 몸을 보면 화가 난다"라며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런 천태는 도축장에서 모욕을 감수하며 참아온 지나온 삶의 당당함으로 손녀와 딸 금옥, 직원들한테도 경상도식으로 기강을 잡는 천태다.

본주의 갱은 그렇게 천태를 중심으로 세대의 다양한 시선들이 교차하며, 천태의 부양을 거부하는 딸을 설득하는 금옥, 청년창업 조리실을 살리겠다며 천태의 생활을 유튜브로 '라방'하자는 도로시의 장면들과, "어미 돼지가 허약하게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고 그 양분으로 젖이 돌게 해 다른 새끼들을 다 살렸다"는 말로 지난 과거를 정당화하는 천태를 돼지처럼 분쇄되어야 할 노쇠한 몸으로 바라보는 피영의 잔혹한 내면의 환영 장면이 지나간 뒤,<갱更〉은 천태가 치매의 망상 속에서 한쪽 손마저 분쇄기에 넣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조리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천태를 말리던 30대 바리마저 손을 다치면서, 조리실은 천태의 산재보상에 이어 세대를 달리해 반복되는 취약한 노동의 몸을 드러낸다.

결국,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기로 한 뒤 피영에게 요구하는 것은 도로시의 실업급여와 바리의 산재보상이다. 무대는 이어 조리실이 철거된 뒤 피영과 천태만 남겨놓는다. 병에 든 미음통?을 받아든 천태에게 남은 것은 라면 국물도, 쌀 한 톨도 비워낸 새마을정신의 노동하는 몸이 아니라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노쇠한 몸이다. 산업화의 시간을 노동으로 버텨온 천태의 몸은 그렇게 '갱(更)'한다. 마지막 장면은 천태의 남은 보온 통을 받아든 피영이 비로소 천태를 바라보며 그 세대의 몸과 노동을 비로소 공감하는 듯한 시선으로 끝난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많은것들이 담겨진 충돌과 부조화로 '갱' 할 수 없는 '更'

본주의〈갱更〉은 너무 많은 것들이 충돌된다. 몸, 세대, 노동, 천태와 금옥의 관계, 피영의 갈등과 극중인물들로 연결되는 세대를 잇는 서사와 조리실이라는 특수공간으로 집결시켜 공간에서 발화되는 극적 힘이 본주의 영화적 이미지와 시각적 효과들과 충돌하고 교차하면서<갱更〉이 몸과 노동, 세대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이질적 부조화의 균열을 보인다. 특히 조리 통에 넣은 천태의 몸이 음식 재료가 되는 환상은 과하고, 분쇄기 장면 이후 산재와 실업급여로 넘어가는 극 중 장면의 논리가 빈약하니, 마지막 천태와 피영의 화해하는 듯한 장면도 공감하기가 어렵다. 바닥 타일 자국으로 묻은 시간의 노동이 지워지지 않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시각적 이미지는 화려하고, 세대로 이어지는 노동과 몸으로 관통되는 서사의 논리와 극은 본주의 분위기를 뒷받침하지 못하는〈갱更〉 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각적으로 좋고, 화려한 것만 몽타주시킨 느낌이다. 아마 의도의 의미는 큰데, 의미가 감각될 수 없는 것은 유추해 보면, 작·연출이 의미로만 (갱)년기-몸의 변화에서 확장된 박정희 시대 산업화에서 디지털 세대까지 이어지는 노동과 몸을 연결해 세대를 관통해 보려는 의도는 보이나 작·연출한테 금옥을 바라보는 피영 같은 삶의 절박한 경험들이 안 보인다. 결국 본주 작·연출의 〈갱更〉은 이미지의 수사만 가득한 모호한 생존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몸의 관계만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본주의〈갱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이미지적 리듬들이고, 특히 천태로 분한 배우 조하석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천태가 살아온 세월만큼 체득되어 내뱉은 인물의 내면·외면의 투박한 소리와 연기는 공감할 만큼 완벽하다.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갱. 두산아트센터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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