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중지란' 빠진 민주당, 국민의힘 '자중지란' '점입가경'…. 정치권에서는 여기저기 내분으로 몸살이다. 흔히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은, '스스로 자, 가운데 중, 어조사 지, 어지러울 란'으로, "자기들 내에서의 난리"라는 뜻으로, 같은 편 내에서 일어나는 혼란이나 난리를 뜻하는 사자성어이다. 유사한 말로는 '내분(內紛), 내홍(內訌), 내쟁(內爭)'이 있다.
개인이건 조직・단체건 외부의 적과 싸우다 망하기보다 내부 문제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대의 왕수인(王守仁)은 "파산중적이(破山中敵易), 파심중적난(破心中敵難)"이라는 말을 남겼다. "산중의 적을 깨트리기는 쉽고, 마음속의 적을 깨뜨리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진정한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다.
'자중지란'은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만 사용한다. 처음 나오는 곳은 《조선왕조실록》 세조 7년(1461) 6월 26일 자 기록에서다. 즉 대마도를 다스리는 제10대 대마도주(大馬島主) 종성직(宗成職: 소 시게모토)이 관직과 녹봉을 내려달라고 요청해왔다. 이때 도승지(都承旨) 김종순(金從舜, 1407~1483)이 세조에게 "관직을 내리시면 '자기들 내에서의 난리(自中之亂)'를 아뢰게 될까 두렵습니다"라며 '자중지란'이란 말을 썼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중종, 명종, 선조, 인조, 숙종, 순조' 때의 기사뿐 아니라 『율곡전서』, 『대산집』 등의 문집, 나아가 근대사료에도 다수 등장한다. 자중지란이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때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최강 오스만 제국도 정예 군단 예니체리 내부의 권력 투쟁과 끊임없는 분란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의 명나라 또한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곪은 상처로 무너졌다.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도, 연개소문 사후 그의 아들들 간의 권력・영토 다툼 끝에 멸망했다. 모두 자기들끼리 난리를 치다가 망해갔다.
개인의 몸이건 조직・단체라는 몸이건, 유기적 생명체인 이상 '생로병사,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모두 끝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 끝엔 다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매우 자연스러운 사실이자 삶의 비극적인 현실을 말해준다.
고대 인도인들의 눈엔 우리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수행을 위해 그저 유지(보호)하다가 끝내는 버려야 할 것이었다. 참된 나는 거기에 없다. 수행자들은 온갖 물질이 출입하는 감각의 구멍을 잘 알고, 잘 다스려야 하는 일을 핵심으로 삼았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집 『마하바라타』에서는 인간을 그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진 상처"로 보았다. 몸은 '상처=아픔'의 구멍이 숭숭 뚫린 밭이다. "지혜로운 자는 이 밭을 알고 경작하는 자"라고 한다. 이보다 뒤에 성립한 『미린다팡하』에서도 부처의 말을 인용하여, "육신은 끈적끈적한 살갗에 덥힌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종기와 같다. 부정(不淨)하고 악취 있는 것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라고 했다.
그렇다. 개인이건 조직・단체이건, 욕망과 권력의 '구멍 난 상처'를 업보로 데리고 산다. 그래서 각자는 자신을 위해서 살며, 투쟁한다. 구스타프 말러는, 바람둥이 부인 알마 말러에게, 이런 처연한 진실을 내뱉는다.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열망한다. 알므쉬(알마의 애칭)"(für dich leben! Für dich streben! Almsch!).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어쩌랴! 삶이란 언제나 그 모양 그 꼴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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