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그러나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이제 단 5명뿐이다. 2015년만 해도 238명이었던 생존자가 11년 사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피해자의 기억을 누가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른바 '포스트 생존자 시대'다.
최근 발표된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오래된 현재」와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운동의 수행성-<시민모임>을 중심으로」 연구는 그 답을 대구·경북에서 찾는다. 활동가들의 구술과 시민모임의 30여 년 활동을 통해 피해생존자의 기억이 어떻게 지역사회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했다.
◆전국 피해 신고자 절반 이상 영남에
대구·경북은 일찍부터 피해생존자를 지원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1997년 창립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시민모임'은 피해생존자의 생활 지원과 기록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영남권에 집중된 피해자 분포가 있다. 2001년 기준 전국 피해 신고자 192명 가운데 경남은 59명(30.7%), 경북은 47명(24.5%)이었다. 두 지역을 합하면 106명으로 전체의 55.2%를 차지한다. 전국 피해 신고자 두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영남권 출신이었던 셈이다.
시민모임은 대구·경북 지역 피해 신고자 27명을 지원 대상으로 삼았고, 이 가운데 23명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병원 진료와 장보기, 생일과 명절, 외부 일정 등을 함께하며 지역 신고 피해자의 85.2%를 돌봤다. 국가와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피해자의 일상을 지역 시민들이 함께 돌본 것이다.
◆17명에서 200명…시민 연대
지역사회의 관심은 시민모임의 성장 속도에서도 확인된다. 1998년 1월 발간된 소식지 1호에 이름을 올린 회원은 17명이었지만 한 달 뒤 40여 명으로 늘었고, 같은 해 7월에는 200여 명을 넘어섰다. 반년 만에 회원 수가 11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대학생과 의료인, 법조인, 교사 등 다양한 시민이 참여했다.
피해생존자도 운동의 주체가 됐다. 1998년 이용수·심달연·김분선·김끝순·서봉임 등 5명이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집회와 강연, 증언 활동에도 함께했다. 피해자는 지원을 받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운동을 이끌어가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연구는 이를 대구·경북 운동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피해생존자를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운동의 주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 돌봄에서 기록·교육·소송까지
피해생존자와 함께 만든 지역 운동은 돌봄에만 머물지 않았다. 연구는 시민모임이 생활 지원을 넘어 기록 사업, 법적 대응, 교육, 국내외 연대를 함께 수행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성과는 기록이다. 시민모임은 2004년 구술 증언집 5권을 발간했다. 피해 당시뿐 아니라 어린 시절과 귀환 이후 삶까지 담아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했다.
기억을 남기는 방식도 다양했다. 2003년 시작한 압화 프로그램은 사회적기업 '희움'으로 이어졌고, 2015년에는 대구 중구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희움이 문을 열었다.
법적 대응도 이어졌다. 이용수 피해생존자 등을 포함한 원고들은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 '평화' 557번, '인권' 452번, '민족' 215번
시민모임이 무엇을 중심 가치로 삼았는지는 소식지에 남은 단어에서도 확인된다.
연구가 시민모임 소식지를 분석한 결과 '평화'는 557회, '인권'과 '여성인권' 관련 표현은 452회 등장했다. '민족' 관련 표현은 215회였다. '평화'는 '민족'보다 약 2.6배, '인권'은 약 2.1배 더 많이 사용됐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민족을 넘어 전쟁과 여성인권의 문제로 확장한 지역 운동의 흐름을 보여준다.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 당시에는 대구지역 시민단체 33곳이 연대 조직을 꾸렸고, 일본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 지역 활동가들과도 교류했다. 국가를 넘어 지역과 지역이 연결되는 '글로컬 연대'였다.
◆ 생존자는 줄었지만 기억의 주체는 늘었다
17명으로 출발한 시민모임은 반년 만에 200여 명으로 성장했다. 지역 피해 신고자 27명 가운데 23명의 삶을 함께했고, 증언집 5권과 역사관, 65권의 소식지를 남겼다.
두 연구가 공통으로 주목한 변화도 여기에 있다. 연구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생존자의 증언에만 의존하는 시대를 넘어 시민과 지역사회가 기억을 이어가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며 "피해생존자는 줄어들었지만, 기억의 공동체는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생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억을 얼마나 오래 보존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억을 누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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