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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따로 또 하나, 동이족의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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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 효문화, 직접적인 조상숭배·하늘에 대한 제천의식 결합
조상들이 저 세상에서도 자신들을 지키주리라고 믿었기 때문

무위시(武威市) 마저자(磨咀子)에서 출토된 무도문 채도분(舞蹈紋彩陶盆)
무위시(武威市) 마저자(磨咀子)에서 출토된 무도문 채도분(舞蹈紋彩陶盆)

◆흥륭와문화의 주거지 매장과 조상숭배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경이로왔던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효문화였다. 살아있는 부모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들도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일 때마다 온 종족이 모여 제사를 모시는 모습은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서양인들에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중원의 동이족 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우리 효문화의 뿌리가 신석기 시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동이족 효문화는 직접적인 조상숭배와 하늘에 대한 제천의식이 결합되었는데, 나는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을 '따로 또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이족들이 왜 조상을 숭배하고, 제천의식을 치렀는지를 보면 이 둘이 별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상숭배부터 보자. 중국 내몽골 자치구 오한기(敖漢旗)에 있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B.C.5200)는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동이족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데, 최초의 환호(環濠), 즉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둥글게 도랑을 판 해자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흥륭와 사람들은 집안에 시신을 묻고 껴묻거리로 돼지를 같이 묻기도 했다. 집안에 시신을 묻은 것은 죽음은 삶의 연속이라는 사상이며, 조상들이 저 세상에서도 자신들을 지키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는 생명의 원기가 나오는 북두로 여겨 죽은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고 여겼기에 함께 묻었다.

자산문화 대표유물 원통형모양 그릇과 새 머리 받침다리
자산문화 대표유물 원통형모양 그릇과 새 머리 받침다리

◆홍산문화의 여신묘와 제천의식
흥륭와문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가 풍만한 여신상이다. 동이족 흥륭와문화는 조보구문화(趙寶構文化:B.C 5000~B.C.4400)로 연결되고, 조보구문화는 유명한 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3000)로 계승된다. 홍산문화에 속하는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1983년에 발견되었는데, '단(壇:제단)·묘(廟:사당)·총(塚:무덤)'이 함께 발굴되어 중국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단·묘·총(壇廟塚)'이 갖추어진 것은 이미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하량 유적에서는 동이족 특유의 모계사회 전통에 따라서 여신묘가 발굴되었는데 흙으로 빚은 여신의 얼굴이 있고, 여신의 왼쪽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새 부조와 발톱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곰의 발을 형상화한 상징물이 출토되었다. 하늘(새)을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결합한 부족의 조상신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단군은 하늘 부족인 환웅과 곰 부족인 웅녀의 혼인으로 태어나 고조선을 세운 우리민족의 건국시조이다. 우하량 여신묘를 만든 동이족은 곧 단군의 선조들로 해석할 수 있고, 이 국가는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神市)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하량 제2지점에서는 3단으로 쌓은 둥근 원형(圓形) 제단과 네모난 방형(方形) 제단이 발견되었다. 원형은 하늘을, 방형은 땅을 상징하는데, 이 제단 위에 군장이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면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지인(天地人)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산문화 사람들 생활 모습 재현
자산문화 사람들 생활 모습 재현

◆자산문화와 대문구 문화사람들이 중시한 새
중원의 동이족 유적으로 이동해 보자. 1972년 하북성 무안현(武安縣)의 자산문화(磁山文化: B.C. 6400~B.C. 5400) 유적에서는 원통모양의 그릇(통형우{筒形盂})과 이를 받치는 새 머리 모양의 받침다리가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자산문화를 원시(原始) 한장족(漢藏族) 문화라면서 고대 한족(漢族)과 연관있는 것처럼 우기지만 새를 조상으로 여긴 동이족 문화유적이다.

산동성 태안(泰安)에서 발견된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B.C. 4300~B.C. 2500) 역시 동이족 문화인데, 중국에서 황하문명의 핵심으로 꼽는 용산문화(龍山文化:B.C. 3000~B.C. 1900)로 이어진다. 현 중국의 동이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도대체 한족(漢族)문화는 어디에 있는지 저절로 궁금해질 정도로 동이문화 천지다. 이 대문구문화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소호금천씨 부족의 유적이라고 시인한다. 소호 금천씨는 김유신 비문에서도 나오는 김씨의 조상인데, 새를 신성하게 여기는 새토템사상을 갖고 있었다. 산동반도는 원래 동이족의 무대였는데 그 중심지는 공자(孔子)의 고향이었던 북부 곡부(曲阜)와 중부의 임기(臨沂)시였다. 이 임기시에 춘추시대 담국(郯國)이 있었는데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었다. 『춘추좌전』에는 소호씨가 즉위할 때 봉황이 나타났으므로 새를 벼리로 삼아 관직명을 정했다는 담국의 군주 담자(郯子)의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산동지역에서는 많은 새 모양의 그릇과 의기가 출토되었다.

한편 대문구문화에서는 돌구슬을 물고 있는 유골이 출토되었다. 유골에는 양쪽 어금니 잇몸을 깎고, 이를 발치한 흔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입모양을 새처럼 뾰족하게 만들려고 한 것으로서 잇몸을 깎는 큰 고통을 감수하고 평생 이를 참아 낸 이유는 새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신화집이자 인문지리서인 『산해경』에서는 사람과 새가 결합된 새사람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묘사들은 새 숭배사상, 난생신화 등과 연관되어 있다.

자산문화 새 머리 받침다리
자산문화 새 머리 받침다리

◆난생신화의 주제는 천손사상
난생신화는 여지없는 동이족 건국신화이다. 중국 하·은·주(夏殷周)의 하나였던 은나라 시조 설(契)도 난생신화다. 『사기』 「은본기」는 '제곡(帝嚳)의 차비 간적(簡狄)이 냇가에 목욕을 하러 갔는데, 하늘에서 현조(玄鳥)가 날아오더니 알을 하나 떨어뜨렸다. 간적은 그 알을 먹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은나라 시조 설(契)이다'라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와 같은 난생신화로서 이는 은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을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 1916~2001)와 장광직(張光直, 1931~2001)은 난생신화는 동이족 신화라고 인정했다.

난생신화에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이 담겨 있는데, 대표적인 천손은 단군이다. 단군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신시(神市)에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천제(天帝) 환인의 서자 환웅은 풍백, 운사, 우사 등 무리 3천 명과 함께 하늘에서 신시로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시조가 하느님이라고 믿는 집단에게 하늘에 대한 제사는 곧 시조와 조상에 대한 제사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보이는 것 또한 이들도 천손(天孫)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해성 대통현(大通縣)에서 출토된 무도문재도분(복제품)
청해성 대통현(大通縣)에서 출토된 무도문재도분(복제품)

◆은나라 정월을 사용한 부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동맹(東盟), 부여에는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고구려의 동맹은 10월이었는데, 부여의 영고는 은정월(殷正月)이었다. 은정월은 은(殷)나라의 정월을 뜻하는데, 하(夏)나라는 음력 1월, 은나라는 음력 12월, 주(周)나라는 음력 11월이 정월이었다. 부여가 은 정월에 영고를 지냈다는 것은 곧 은나라의 달력을 사용했다는 뜻인데,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중국 학자들도 모두 인정한다. 영고 때는 몇일 동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였으며, 형벌과 옥사가 중단되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고 「동이전」에서 전한다.

우하량 제2지점 방형재단
우하량 제2지점 방형재단

◆마가요문화의 집단무와 제의

현 중국 서북부 감숙성(甘肅省) 임조(臨洮)현의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 B.C. 3300~B.C.2000)는 1923년 스웨덴의 지질학자 앤더슨이 발굴했는데, 신석기시대 채도(彩陶)문화로서 후기에는 청동기가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집단으로 춤추는 모습과 새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려진 무도문채도분(舞蹈纹彩陶盆)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감숙성 무위(武威)시와 청해성 대통현(大通县)과 동덕현(同德县) 종일유지(宗日遗址) 등에서 집단으로 손잡고 춤추는 무도문(舞蹈纹)이 발견되었다. 이런 집단무는 공동체가 함께 행한 제의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집단무와 새와 관련된 상징은 동북지역에서부터 중원 지역뿐만 아니라 남쪽의 장강 유역, 그리고 서쪽의 감숙성 일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과 다른 시기에 동일한 문양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버드대 중국계 고고학자인 장광직은 성읍국가 건설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광직은 하·은·주 삼대의 제도를 통해서 성읍국가가 어떻게 건설되었나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씨족이 있다고 치면 그 씨족한테는 본래 선조, 즉 원시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시조의 자손들이 후손에 후손을 낳으면서 인구가 불어나게 된다. 이때 원시조의 계승권이 없는 후손이 이주를 해서 새로운 씨족을 만드는데, 이주할 때 원시조를 계승한 인물에게서 무리와 영토를 분배받고, 그 영토의 관할권과 성읍의 이름도 부여받는다. 또한 원시조와의 관계를 보증해주는 의식부호나 도구를 받아 새로운 땅으로 이주한다. 이렇게 원시조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땅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스스로를 상징하는 부호를 만들어 새로운 부족의 창립을 공표한다"는 것이다.

우하량 제2지점 원형재단
우하량 제2지점 원형재단

◆조상은 지위와 신분의 보증수표

장광직의 이론은 우리 단군신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환웅은 환인의 서자인데 서자는 장남을 제외한 자식을 말한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신시에 내려올 때, 환인으로부터 그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천부인 세 개를 받아서 내려와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했다. 그런데 환웅이 신시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홍산문화에 남아 있는 여러 제단들을 볼 때, 제단을 쌓고 조상에게 고하는 일부터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주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본래 자신이 속했던 원시조 집단의 서열을 유지한다. 새로운 성읍국가들 사이에서도 이 서열은 지켜지기 때문에 계보가 매우 중요해진다.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조상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조상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보증해 주는 강력한 보증수표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따로 또 하나'

동이족에게 조상은 단순히 죽은 선조가 아니었다. 조상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주는 존재였고, 새로운 집단을 세울 수 있는 권위와 정통성의 근원이었다. 동이족들은 자신들의 최초 조상, 즉 시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늘에 이르게 된다. 은나라의 시조 설이 현조의 알에서 태어나고, 단군의 조상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실례를 보여준다.

따라서 시조가 하늘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조상에 대한 제사와 하늘에 대한 제사는 별개의 의례일 수 없었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에 이르고,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이족에게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이 '따로 또 하나'였던 이유이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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