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속, 풍경은 늘 똑같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바쁘게 쓸어 올린다. 그 사각형의 세계 속에서 매일 남들의 화려한 외양이나 가공된 지표를 확인하며 자기 삶을 저울질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자본의 시대는 인간의 내면마저 등급과 수치로 상품화하며 존엄조차 비교우위로 재단한다. 가치 평가의 저울을 외부에 빼앗긴 채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좌표를 잃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얼마짜리인가"
이 서글픈 풍경은 예술계도 비껴가지 않는다. 작가의 고뇌나 예술적 깊이는 희미해진 채, 인위적인 마케팅과 특정 계층의 기호로 형성된 '수치화된 몸값'이 마치 절대적인 기준처럼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내면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열망은 창작의 동기이자 진정한 희망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시장이 매긴 몸값의 숫자에 끊임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눈먼 욕망은 결국 독이 될 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장의 풍랑에 비껴 있는 것은 일종의 혜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안전함이 오히려 야생마 같은 창작 본능을 무디게 만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화실의 텅 빈 화폭 앞에서 다시 나의 자리를 묻는다. 세상이 매긴 가격표가 사라진 하얀 화면 앞에서는 부질없는 탐욕에 가려졌던 스스로의 모순이 비로소 투명하게 드러난다.
세상을 끝없이 스크롤 하는 '알고리즘의 시대'에 새삼 동양의 고전을 꺼내는 것이 진부한 비유일까.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기에 고전의 낡은 지면에서 오래된 답을 꺼내 본다. '논어(論語)' 팔일편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는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라는 뜻이다. 이는 '내면의 본질이 선행되어야 외면의 꾸밈도 그 의미를 갖는다'는 근원의 미학이며, 무조건 비우는 것이 아니라 고유함을 끝까지 남겨두는 성찰이다.
몸값을 높이고 비싸게 팔라는 세상에서, '회사후소'는 도피의 언어가 아니다. 세상이 어느새 입혀놓은 가짜 색깔들을 잠시라도 지워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나라는 고유한 바탕이 드러나는 현실적이고 처절한 방어기제다. 진짜 창작의 계기는 자본의 숫자를 지워낸 자리에 오롯이 새겨질 예술적 열망과 솔직하게 대면할 때 찾아온다.
진정한 자유는 숨 막히는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대결을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이 정한 기준은 흔들리는 파도와 같다. 치열한 시장의 한복판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더라도, 영혼의 중심추만큼은 내면에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 지표로 증명받고자 하는 내면의 조바심을 다잡는 엄격한 시간이다. 첫 붓질을 하기 전, 생각이 끊긴 고요한 자리에서 비로소 투명한 '내 영혼의 맨살'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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