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불안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직접 해명한 데 이어 주말이 지나자마자 21일 아침 당정이 보완책을 내놨다. 사흘 사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잇따라 진화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이 문제가 민심에 상당히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84만 필지 대규모 '위반 의심'
불안의 첫 출발은 규모였다. 정부가 기본조사를 마친 1천13만 필지 가운데 27%인 284만 필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아직 위법이 확정된 농지가 아닌데도 '284만 필지'라는 숫자와 처분명령, 이행강제금 같은 단어가 함께 알려지며 "내 땅도 처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키웠다.
물론 농지가액의 25%에 달한다는 이행강제금은 위반 의심 농지에 곧바로 부과되는 것도, 이번 조사로 새로 생긴 제도도 아니다. 처분명령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정가격과 개별공시지가 중 높은 금액의 25%가 부과된다. 부과율은 2021년 이미 20%에서 25%로 높아졌다.
다만 올해 농지법 개정으로 처분명령 사유가 발생했는데도 지방정부가 명령을 생략할 수 있었던 재량규정이 의무규정으로 바뀌었다. 처분 절차가 이전보다 엄격해졌다는 점이 불안을 키운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농촌 현실은 '직접 경작' 한마디로 안 끝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과 농촌 현실의 거리다. 현행 농지법도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나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고령농, 상속농지 등에 임대·소유 예외를 두고 있어 고령이거나 농지를 상속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농촌 현장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구두 임대차나 신고되지 않은 임대차 등 관행이 법률상 요건과 어긋나는 경우다. 정부 역시 이런 현실을 인정해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을 운영하고 서면계약과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농지는 일부 소유자에게 생산수단인 동시에 노후 자산이나 상속재산의 성격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조사→위반 판정→처분'이라는 경로가 부각되고 처분 절차까지 강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정책 취지와 별개로 재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땅값 떨어지고 안 팔린다"…통계는 다르다
현장에서는 전수조사 이후 농지 거래가 얼어붙고 가격도 떨어진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그런데 현재 전국 통계만 놓고 보면 이를 전수조사의 결과로 단정하긴 애매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시한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농지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늘었다. 농지 실거래가격 하락률도 지난해 5.3%에서 올해 4.4%로 오히려 둔화했다. 정부가 "농지 거래가 줄거나 가격이 폭락했다는 통계적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하는 근거다.
다만, 전국 평균과 개별 농촌지역 주민이 체감하는 매매 어려움은 별개의 문제다. 당정이 이날 농지은행 매입과 농지연금 예산 확대까지 꺼낸 것도 "팔려고 해도 사갈 사람이 없다"는 현장의 불안을 의식한 조치로 읽힌다.
◆'국가가 내 땅을 뺏는다'는 공포…역사적 기억까지?
여기에 한국 사회의 강한 토지 소유 정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거치며 자작농 중심 구조가 자리 잡았고, 산업화 이후에도 토지는 교육과 함께 계층 상승과 노후 대비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돼왔다.
특히 고령층 일부에서는 국가가 개인 토지를 처분하게 만든다는 설명이 북한이나 과거 공산주의 체제의 토지 몰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실제 온라인, SNS, 뉴스 댓글에서는 "땅을 빼앗는다" 등의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보다 설명이 늦어버렸다
정부가 투기와 관행적 위반을 구분하겠다는 설명을 이제야 처음 내놓은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월 기본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부터 투기 농지는 철저히 조사하되 일반적인 위반은 일률적인 처분보다 계도 등 대안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농촌 현장에서는 '284만 필지' '처분명령' '25% 이행강제금' 같은 강한 단어가 더 크게 받아들여졌다. 정책 설명이 없었다기보다 정부의 설명이 재산권 불안을 충분히 누르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8일 기자회견 막판 농지 문제를 스스로 길게 거론하며 "명확한 부동산 투기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고령 농민의 땅을 무조건 강제 매각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뒤 해당 설명을 사실상 마무리 발언으로 이어갔다.
◆결국 '처분'에서 '양성화'로
21일 당정이 내놓은 대책은 이런 불안을 상당 부분 거꾸로 풀어내는 내용이다. 명백한 투기는 엄정 처분하되 상속·고령 농지와 관행적 임대차는 일괄 처분하지 않고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정상화하기로 했다. 불법 전용농지도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38년 만에 사후 양성화 기회를 주고, 이를 위해 연내 특별조치법까지 만들기로 했다.
결국 농지 전수조사 논란의 밑바닥에는 투기 단속 찬반만 있는 게 아니다.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 상속과 관행적 임대차, 농지가격에 대한 불안, 재산권과 '내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이 한데 얽혀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한 차례 해명이나 당정의 한 차례 보완책만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정부 스스로 어려운 과제를 제시했고 스스로 찾아야 할 정답 역시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정부가 밝힌 대로 실제 조사와 후속 처분 과정에서 '명백한 투기·중대 위반'과 '관행적·경미한 위반'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해내느냐가 불신을 걷어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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