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무빈소 가족장'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이자 경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살아서도 빽빽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던 현대인은, 죽어서도 작은 상자로 켜켜이 쌓인 '납골당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 효율성에 인류가 가꿔온 죽음에 대한 예의와 낭만은 지극히 납작하게 생략돼 버렸다. 과연 인간의 마지막 자리는 이토록 간소하게 지워져도 괜찮은 것일까.
그 쓸쓸함의 끝에서 천오백 년 전, 죽음을 거대한 우주적 대화로 마주했던 고구려인들의 무덤 천정을 떠올린다. 찬란한 벽화고분은 귀족들의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만주 집안(集安) 지역에 산재한 무려 1만 2천여 기의 큰 무덤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고구려 고분은 여러 개의 방에서 하나의 방 구조로 변해갔지만, 시선의 설계만큼은 일관됐다. 벽면에는 주인공이 생전에 누렸던 지상의 삶을 그렸고, 천정에는 죽음 이후 맞이할 영원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경이로운 점은 피장자가 누워 천정을 바라볼 때, 그 눈길이 닿는 우주가 정면으로 마주 보이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무덤은 어두운 매장지가 아니라, 누워서 영원히 하늘을 감상하는 '사후의 극장'이었다.
고분에는 사후 세계를 상상하던 고구려인들의 취향과 희망이 서려 있다. '별자리 무덤'인 덕화리 고분이 대표적이다. 팔각형의 평행 고임과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누워 바라보는 천정은 온통 별자리로 가득하다. 추상적이고도 완벽한 짜임은 흡사 은하계를 관측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무용총의 천정 또한 회화적 아름다움의 극치다. 신선과 영물, 음악을 연주하는 선인들이 단순하면서도 유연한 선과 색으로 그려져 있다.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자유롭게 비상하는 영혼의 낙원이었다.
인간의 육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내어주며 영혼을 온전히 하늘로 보내는 티베트의 '천장(天葬)'처럼, 고구려인들 역시 무덤의 천정을 통해 영혼이 하늘 세계로 이어지기를 갈망했다. 천정이 영원한 우주로 열린 숨구멍이었던 셈이다. 반면 효율적인 행정 절차로만 끝나는 현대인의 죽음에는 하늘을 우러러볼 천정이 사라졌다. 사후 세계의 상상력과 낭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죽음은 너무나 가난하다.
치열한 삶을 끝내고, 우리가 돌아갈 마지막 자리가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콘크리트 수납함에 갇히더라도 영혼만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덕화리 고분 벽화의 천정 별자리처럼, 무용총의 선인 풍경처럼 드넓고 자유로운 새 우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한다. 죽음 이후 미지의 여정마저도 인간이 갈구하는 희망과 영성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하늘이 있는 삶과 죽음'의 여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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