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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전병서] 반도체 돈벼락, 씨앗인가 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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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지금 한국 경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수출도 반도체가 하고, 성장도 반도체가 하고, 세금도 반도체가 내고, 국민연금 수익도 반도체가 내며, 주가 폭락도 반도체가 한다. 9월 수출은 사상 처음 1,209억 달러를 넘었는데 그중 반도체가 603억 달러로 거의 절반이다. 메모리 하나가 540억 달러를 실어 날랐다. KDI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3.2%로 0.7%포인트 올렸는데, 상향분 가운데 0.6%포인트가 반도체와 그 파급효과다. 수출 1조 달러 시대의 축포가 터지고 있지만 그 폭죽의 화약은 단 한 종류뿐이다. 우물 하나가 나라 전체의 갈증을 풀어주는 형국이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 우물이 마르는 날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벼락 중에 가장 무서운 벼락은 돈벼락이다. 왕관의 무게를 견딜 실력이 없는 황제는 결국 그 무게에 눌려 나라를 망친다. 지금 한국은 메모리 가격 폭등이 안겨준 횡재에 온 나라가 들떠 휘청인다. 그런데 청년 고용률은 2년 넘게 내리막이고, 고용탄성치는 8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정된다. 숫자로는 호황인데 체감은 불황인, 통계만 배부른 경제다. 더 위험한 것은 착각이다. 반도체는 4년 주기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이클 산업이다. 오늘의 슈퍼사이클은 내일의 공급과잉을 잉태하고 있고, 중국의 메모리 추격은 그 시계를 더 앞당기고 있다. 이 호황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곳간을 헐어 지르고 황금 돈벼락을 미래의 씨앗으로 심지 않고 갈라먹기에 혈안이 되면 망한다. 햇빛 쨍쨍할 때 비 오는 날을 대비하지 않으면 쫄딱 젖어 울게 된다.

정치의 시야는 더 답답하다. AI는 국가의 전략무기이고, 그 핵심 인프라인 반도체는 전략물자이자 사실상의 방위산업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반도체 지원을 국방비로 보지 않고 재벌 보조금으로 본다. 80년대 운동권식 사고와 철학으로 2026년의 기술 전쟁에 나서는 것은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유럽까지 반도체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데 한국만 지원을 금기시한다. 국방비를 아끼면 국방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입으로는 AI 강국을 외치면서 국가 백년대계를 표심과 맞바꾸고, AI 전문가를 선거판으로 내모는 나라에 AI의 미래는 없다.

결국 문제는 사람, 그중에서도 리더다. 한국에는 지금 시대를 꿰뚫어 보는 테크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가전이 전성기이던 80년대, 한국의 테크 리더는 모두가 무모하다던 반도체를 이 땅에 심었고, 그의 아들은 그것을 세계 정상으로 키웠다. 오늘 우리가 먹는 밥은 40년 전 한 사람의 통찰이 지은 밥이다. 그런데 다음 세대의 밥을 지을 농사꾼은 보이지 않는다. 80년대의 구루가 기업의 성패는 컴퓨터 활용에 비례한다고 내다봤듯, 2020년대 기업과 국가의 성패는 AI 활용에 비례한다. AI 시대를 꿰뚫어 보는 테크 리더가 있느냐 가 한국의 향후 40년을 좌우한다.

구루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집중과 천착, 관찰과 내공이 쌓여야 탄생한다. AI 시대는 한 트럭의 범재가 아니라 괴팍한 천재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대다. 한국은 어떤가. 치맛바람이 유치원부터 군대, 직장까지 따라붙는 나라,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가 평범한 직장인으로 늙어가는 나라, 엔지니어를 존경하기보다 부리기 좋은 기능인으로 보는 나라에서 천재는 자라지 않는다. 모난 돌을 정으로 쪼아 둥글게 만드는 교육과 사회 시스템으로는 AI 시대의 나라를 먹여 살릴 괴짜를 길러낼 수 없다.

천재 하나에 제도와 정책, 국가 전략, 기업의 선제적 행동이 맞장구칠 때 비로소 AI에서 성공의 열쇠가 나온다. 이건희 회장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 비전을 가진 테크 리더십이 절실하다. 반도체 돈벼락은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이 돈을 AI 인재와 원천기술, 인프라에 쏟아붓는다면 돈벼락은 독이 아니라 씨앗이 된다. 이 돈으로 잔치를 벌일 것인가, 다음 40년의 씨앗을 심을 것인가. 역사는 늘 축포 소리가 가장 클 때 몰락이 시작된다고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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