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행복의 기준

시내버스에 안내양이 있던 시절이었다. 무슨 말끝에 안내양이 기사에게 쏘아붙였다. [돈만 있다고 행복합니까?] 기사가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행복하려고 돈버냐? 술마시려고 돈벌지!] 안내양이나 기사가 다같이 행복의 기준을 물으면서 나름대로 철학을 하고 있었다.그리스 말기의 철학자 에피쿠루스도 이 기사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이 보다 많은 쾌락을 누리는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그가말하는 쾌락속에는 정신적인 쾌락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 지속적이기 때문에더 귀중한 정신적인 쾌락은 그러나 금욕이 아니라 육체적인 쾌락을 기초로한다는데 그의 독창성이 엿보인다.

행복의 기준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왔다. 있지도 않은 먼것 때문에 가까이 있는 구체적인 행복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에피쿠루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행복의 기준을 개인적인 쾌락이나 집단적인 우정에 국한시키고 사회적 정의에까지 확대시키지못했다. 물론 인간은 우선 개인으로서 행복해야 된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사는 것이 아니고 항상 사회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이행복해야 하고 개인의 행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안정되어야 한다.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은 소수 기득권자들의 권익이 유지되고 다수가 고통을받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의 행복만이 추구될때 이기주의가 만연한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정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수 있느냐가 문제이다.정신적인 행복만을 고집하는 것은 너무 관념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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