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시내에서는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성격마저도 판이하게 다른 행사를 가졌다. 하나는 이날 오전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5.16} 33주년 기념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틀 앞당겨 열린 민추협창립 10주년 기념식이었다.김영삼정권 출범이후 이 두 집단에 대한 성격규정은 명확한 구분이 지어졌다.김대통령은 지난해 5.16을 [역사를 후퇴시킨 사건의 시작으로 군사쿠데타적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민추협은 문민정부가 있게한 6.10항쟁의 모태로서 자리매김을 받았다.
이때문인지 이날의 두 행사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민추협행사가 대대적인성황을 이룬 반면 5.16행사는 마련한 자리도 다 못채운 채 끝이 났다. 역사적인 평가는 뒤로 미루더라도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하나는 현 정권의 주도세력이 이끈 단체였고 다른 하나는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었다.
0---이날 5.16행사는 단출하게 끝이 났다. 현역의원도 김대표와 이종근 김영광 안찬희의원 등 4명뿐이었다.
김종비민자당대표등은 국립묘지도 참배했지만 지난해 {기승전결}론같이 5.16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조하는등의 정치적 언급은 없었다. 김대표는 다만 자신의 참뜻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각에서 우리참뜻을 왜곡해 안타깝지만 민족중흥을 위한 열정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주 일일교사로 나간 자리에서 하고싶은 말을 다했기때문인 것 같았다.그는 그 자리에서 [문민정부는 개발의 토양위에서 가능했다]고 문민정부를탄생시킨 토대가 5.16에 의한 경제발전에 있음을 강조했다. 물론 김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당내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김대표나 주체세력 어느 누구도 여기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탐탁치 않은 기색은 역력했다. [역사는 반드시 정당하게 평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듯 했다.
0---18일이 석가탄신일이기 때문에 이틀 앞당겨 치러진 민추협창립 10주년 행사에는 현재 여야로 나눠진 상도동과 동교동 인사 수백명이 참석하는 성황을이뤘다. (출범초 양대세력은 50대50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가졌다) 자신들이야말로 현정권 나아가 문민시대를 탄생시킨 역사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있는듯했다.
이날 김상현민주당고문(창립당시 민추협공동의장권한대행)은 인사말에서 [비록 정당과 정치의 길을 달리해도 민추협정신을 되살린다면 역사에 큰 힘을 낼수 있을 것]이라며 재결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형우내무장관(창립당시 상임운영위원)도 [민추협은 신민당의 탄생과 6월항쟁을 거치면서 80년대 민주화투쟁의 중추적 역할을 해냈고 오늘날 문민정부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민추협은 80년대 한국민주화운동의견인차였으며 민추협이 없었더라면 87년 6월 민주항쟁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준비위측은 지난 대선을 통해 승자와 패자, 여와 야로 갈린 두 세력을 의식한듯 [민추협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고강조하고 [모든 동지들이 그 때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앞으로도 민추협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을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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