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책차이.묵은감정등 난제 첩첩산중

무라야마(촌산부시) 일본총리가 관저에서 첫 공식회견을 가진 1일, 기자들은중의원 조기해산-총선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자-사연립정권이 오래갈리가 만무하다는 안팎의 불안한 시선을 대변한 것이다.그러나 무라야마총리는 이를 적극 부인했다. "불안하게 보고있다는 점을 잘알고있기에 더욱 장기 안정정권이 되도록 전력을 기울이겠다|" 그는 이어 가을 국회에서 소선거구획정 법안이 통과돼도 즉시 선거를 실시할 생각은 없다고 말해 내년이후까지 바라보는 {장기집권} 의지를 보였다.하지만 갓 취임한 총리가 {머잖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말할 리도 없고, 그렇다고 진짜 그의 장기집권을 믿는 사람도 없다. 만년 여야로 적대관계였던 두 당이 한솥밥을 먹는다고 해서 묵은 감정과 체질적 거부감이 쉬 삭을 까닭이 없으며 안팎의 난제와 이견에 시달리다 보면 응어리가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욱이 연립내부의 갈등은 구연립측의 유인.와해공작으로 물밑에서 빠른 속도로 기반을 잠식, 작은 집안싸움에도 기우뚱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9일밤 총리지명투표의 무라야마-가이후(해부준수.전총리)대결에서 당명을 어기고 투표한 의원은 자민.사회당 합해 60명을 넘었다. 자민(2백6)-사회(74)-선구(22)의 총삭는 3백2명, 과반수를 47표나 웃돌 터인데도 무라야마 총리는1차투표에서 겨우 21표 많은 2백41표로 과반수마저 밑돌았다. 만약 11명만더 반란표가 나왔다면, 자-사연립은 일장춘몽으로 끝났을 뿐더러 양당은 산산조각 공중분해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는 자-사연립의 위태로움과향후 정계의 유동성을 극명하게 예시해준 신호탄이었다. 반란그룹중 10명은과감히 각 당을 떠났고, 잔류파는 연립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며 정권내에 있을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들은 기회를 엿볼 뿐이며, 연립이 난관에 봉착할때부채질을 해댈 {화농요소}라는 점에서 무라야마 나각과 자-사-선구연립정권은 실질적으로 정계재편의 제3막을 열었다는 분석이 대두된다. 아울러 재편3막은, 이른바 {55년체제}종식과 정치개혁, 자민대 비자민, 그리고 구연립 오자와(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이치카와(시천웅일) 공명당서기장의 매파 {이치이치 라인}에 대한 비둘기파 {자유민주그룹 저항}등의 대립등식을 벗어나글자그대로 보수대 혁신 및 좌-우양립의 구도로 이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그런 의미에서 갑자기 탄생한 무라야마정권은 내부에 함께 껴안고 있는 보-혁과 좌-우를 뒤섞어 재배열하는, 일종의 {원심분리기}역할을 할 과도체제라는것이다.

무라야마 연립이 새로운 정계지각변동의 출발점이라는 {근거}는 오로지 집권욕으로 뭉친 정권내부와 각당의 안팎사정에서 열거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역시 연립내 정책과 노선의 불일치다. 호소카와(세천호희) 정권이 70%이상,하타(우전자)정권이 50%내외였던 것과 달리, 무라야마정권이 30%전후의 빈약한 지지.인기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 것으로 볼수 있다.책사 오자와의 인책사의 표명이 실제로는 {암약을 위한 잠복}이라는 소문도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만약 자-사연립이 암초에 부딪히면 일거에 재편 소용돌이가 일고, 과도기 일본정치가 보-혁 양당구도를 향해 한걸음 더 다가선다는 관측이 현실감을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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