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국주의적 확장 정책과 맞부딪힌 청은 처음부터 왕조권력을 유지하려는 경직된 대응으로 맞서 아편문제를 떠나서라도 두 체제의 충돌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경북대강사 정성일씨는 '아편전쟁 전 청영관계'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청의대외정책이 건국 초기의 비교적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것에서 점차 폐쇄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변화되어갔다고 밝혔다.
청영관계는 크게 광주무역체제라는 폐쇄체제와 청영 양국의 위상과 관련된조공체제라는 두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왕조적 위기를 극복한 청초에는 건국초기 왕조의 자신감과 활력을 바탕으로 개방 정책을 표방, 영국의 중국무역이 광주 하문 영파등지에서 지역적 제한없이 이루어졌다.그러나 초기의 개방성도 한계가 있어 왕조권력 유지에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청은 일반적으로 외부세력 특히 해양세력을 단순히 압력으로서만 받아들였고 청의 대외정책은 왕조지배의 유지라는 측면에서이 외부압력의 절대량을 통제하려는 것으로 방향지워졌다.
따라서 청의 대외정책을 규정한 것은 외부압력의 크기와 그 외부충격을 흡수하는 내부의 대응능력이었다. 두 가지면에서 청은 후대로 넘어올수록 여건이좋지 않았기때문에 청의 대응양식은 더욱 경직되고 폐쇄적인 자세로 나타날수 밖에 없었다.
또 한편 청의 대영정책에 있어서 폐쇄화와 경직화의 경향은 청영관계의 위상변화라는 측면과 관계가 맞물리며, 청영관계는 점차 청나라 대외정책의 외연에서 점차 그 중심적 위치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은 처음부터 체제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만 방향지워져 있고 외부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청은 문단속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이 이처럼 대응한 것은 인식의 문제, 경제구조의 문제, 기타 사회적 문제등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우선해서 왕조권력의 유지라는 체제유지적 관심이 중요한 동인이었다"는정씨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정책과 청의 체제중시의 경직된 대응을 함께생각할 때 아편문제를 떠나서라도 두 체제의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최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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