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언론인의 유엔총회로 불리는 국제언론인협회(IPI) 제44차 연례총회가사흘간일정으로 15일 서울에서 개막됐다. 지난 40년간 IPI로부터 '언론자유감시대상국'으로 취급받아 왔던 한국에서 IPI총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이제 한국의 언론 자유가 세계적 공인을 받을 만큼 신장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창립이래 세계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IPI의 설립 목적과 활동 내용 및 조직 등을 알아본다.◇설립배경 및 목적
IPI의 탄생은 지난 1950년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15개국 신문편집인 회의를 모태로한다. 이해 12월 컬럼비아대학에 모인 34명의 신문편집인들은 언론인들만의 국제적모임을 만들기로 합의, 이듬해인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함으로써 IPI는 출범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IPI의 목적과 이념에 대해 IPI 창립 산파역으로 초대회장이기도 했던 뉴욕타임스의 레스터 마켈은 IPI의 설립 이념을 IPI 헌장에다음과같이 수록했다.
'세계 평화는 각국 국민들이 서로 얼마만큼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세계 국민들간의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간의 필요한 좋은 정보를 서로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 전세계 언론인의 역할은 바로 이런 귀중한정보의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이같은 정신에 입각,IPI는 △인권의 보호△언론자유의 증진 및 수호△국경을 초월한 뉴스에의 자유로운 접근△언론인의 신변 안전 및 자유로운 보도활동의 확보△언론의 질적향상△각국 국민간의 이해증진 등 6가지 목표를 설정,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연혁및 주요활동
IPI의 제1차 총회는 195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됐다. 신문편집인과 발행인등 전세계 21개국 4백60명의 언론인이 참석한 첫 총회는 '언론인의 유엔총회'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해마다 세계 주요도시에서 열려온 IPI총회는 '언론인의 박람회' '언론인의 올림픽' 등으로 불리며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IPI총회에서는 IPI의 운영 문제 뿐만 아니라 뉴스의 국제 교류, 언론에 대한정부의 탄압, 언론과 국제관계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된다. 그러나 IPI의 최대 관심사는 언론의 자유이다.
이를 위해 IPI는 적극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언론을 탄압하는정부에 대해 공개 항의서한을 보내거나 결의문을 채택해 언론자유 침해를 전세계에 폭로하고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한다. 또 매년 12월 발표하는 연보 '세계언론자유 현황'을 통해 세계 각국의 언론탄압 실태를 조사·발표해 자유언론을위한 국제적인 압력단체로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실례로 94년남아연방에서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나이지리아 정부를 상대로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함으로써, 수감중인 나이지리아의유력일간지 발행인 세후라씨가 석방될 수 있었다. 1980년에는 체코의 공산정권하에서 감금중이던 2명의 언론인을 석방시켰다.
이밖에 IPI는 매월 발간하는 'IPI리포트'를 통해 후진국에 선진국의 새로운편집기술을 알려주고 있으며 '언론에 대한 정부의 압력' '테러리즘과 미디어''자유언론'(월터리프만저) 등의 책자도 발간, 전세계 언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조직 및 기구
현재 IPI의 회원국은 89개국, 회원은 신문 방송 통신 잡지의 발행인과 편집인및 보도 간부 등 2천여명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37개사에서 75명이 회원으로가입되어 있다.
IPI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으며 현 본부회장은 미국 타임즈미러 그룹 총괄편집인인 데이비드 라벤돌씨(22대)가 맡고 있다. IPI의 최고 기구는 총회이지만 모든 정책과 행정문제는 회장을 포함해 24명으로 구성된 본부 이사가 결정한다.
언론자유가 보장된 국가만이 설치할 수 있는 IPI국내 위원회는 본부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등 설치조건이 까다로워 현재 89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등17개국만이 국내위원회를 두고 있다.
◇IPI한국위원회
한국의 IPI 가입은 지난 1953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IPI 아시아지역위원회에서 처음 논의됐으나 중국과 함께 한국은 언론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되어무산됐었다.
이후 3년 뒤인 59년 제8차 베를린 총회에서 다시 한국의 IPI 가입 문제가 거론됐으나 개인 자격의 가입만 승인되고 국내위원회 설치는 거부됐다.IPI한국위원회 설립이 성사된 것은 60년 12월. 4·19 혁명으로 군정법령 제88호가 폐지되어 신문발행의 자유가 보장되고 경향신문이 복간되자 IPI 이사회에서 한국위원회의 설치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61년 1월 고장기영 한국일보사장 등4명이 중심이 돼IPI한국위원회 창립을 발기, 그해 2월에 정식 발족하게 됐다.
초대 IPI한국위원회 위원장은 고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며 현 위원장은 방상훈 조선일보사장이 맡고 있다.
임원진은 위원장 외에 부위원장 2명, 김부기 매일신문 사장등 18명의 국내이사와 감사 2명 등 모두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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