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없이 아래로 떨어진다.깜깜하다. 사방 멀리로 별빛만 보인다. 어둠이 넓고 깊다. "시우야!" 윗쪽에서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목멘 외침이다."돌아와. 이 늙은 할미를 두고 너만 가면 어떡해!" 윗쪽에서 할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처음은 어리둥절하다. 한참 떨어지자, 무섭지가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 기분이 좋다. "시우가 오는구나. 빨리 와. 너 목 마르지? 여긴 우물이 있어. 물이 가득해" 아버지의 목소리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물이 있다고요! 정말 목이 말라요.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애요. 더 빨리, 어서 가야겠어요. 아버지,기다려요" 이상하게 말이 잘된다. 그 말을 뱉지는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새가 날개치듯 열심히 팔을 놀린다. 날으는 새 같다. 나는 닭을 발견하고 꽂히듯 내려오는 매다. 한참을 내려가자, 무엇이 보인다.정말 아래쪽에 우물이 있다. 깜깜한 공간에 우물터가 섬처럼 떠있다. 사람들이 우물 주변에 모여있다. 두레박질로 물을 퍼올린다. 물을 마시는 사람이있다. 두레박 물을 머리꼭지에 붓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에 누구인가 내게손짓을 한다. 아버지다. 여전히 여윈 모습이다. 표정은 맑고 밝다. 면도를깨끗이 했다. 아버지가 위를 보며 두 팔을 벌린다. 나를 받으려는 몸짓이다.나는 열심히 팔을 젓는다. 마지막엔 새가 나무에 앉듯 팔을 길게 편다. 나는아버지 품에 안긴다. 비둘기처럼사뿐히 내려 앉는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여긴 살기가 아주 좋은 곳이란다. 특히 너같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지. 똑똑한 사람, 덜 똑똑한 사람, 차별이 없거던" 아버지가 말한다. 아버지는 나를 우물 옆에 내려 놓는다. 아버지가 두레박질을 한다. 물을 퍼올린 두레박 모서리를 내 입에 대어준다. 나는 물을 마신다. 이제 살 것 같다. 갈증이 확 풀린다. 온 몸에 물이 퍼진다. 갈라진 땅으로 물이 스며들듯 골고루물이 퍼진다. 정신이 번쩍 난다. 고드러진 마른 살의 주름이 펴진다. 나는한 두레박의 물을 다 마신다.후두둑. 떨어져 부딪히는 물방울 소리가 들린다. 마치 오동나무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 같다. 아우라지의 집 뒤란에 벽오동나무가 있었다. 오동나무는 잎이 크고 넓었다. 오동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북소리 같았다. 빗발을 맞으면 잎이 크게 흔들렸다. 여름이면 그 그늘이 좋았다. 오동나무 아래 평상을 내놓았다.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삼아 무슨 글을 썼다. 시애와 나는 평상에서 놀았다. 시애는 소꿉놀이를 좋아했다. 자기는 엄마, 나는 아버지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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