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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일요일마다 산으로 간다. 그저 절하러 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간다. 그렇게 빠지지 않고 가는 내가 스스로도 이뻐서 간다. 물론 그렇다고 뭐 대단한 등산을 하는 건 아니다. 한나절 정도 산에 갔다가 점심은 보통 집에 와서 먹는다.팔공산에는 수십 번도 더 갔지만, 동봉이나 서봉까지 올라간 적은 한번도없다. 기껏해야 염불암, 기기암,갓바위까지 올라가서 그냥 절이나 하고 온다. 무얼 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거저 절이나하려고 일요일마다 산으로 간다. 절하는 게 그렇게도 좋았으므로. 멀리 보려고(혹은 멀리서도 보이게 하려고) 한층 한층 더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왔던가. 세상과는 또 얼마나 불화했던가. 세상과의 불화라니, 아마도 가장 큰 불화는 나 자신과의 불화가 아니었던가.몸을 한껏 부풀리는 대신, 몸을 될수록 웅크려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영혼에 닿을 만큼 그윽한 평화 같은 것을 얻게 되었다. 나의 노력으로는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정말 우연하게도 절을 하면서 얻게 되었다.'절'은 할 수 있는 한 몸을 낮추어 될수록 작아지는 일이다. 그 작아지는일 속에 아마존 같은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나는 미리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그곳으로 아주 이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절하고 밥먹고, 절하고 변소가며, 절하고 책읽고, 절하고 사람 만나며, 절하고 잠자며 깨어날 수 있을 그때까지, 나는 산으로 가서나마 그저 절하고싶다. '절'은 아직 내 마음 속에 있는 산같은 장애물 넘어 있기 때문에.대구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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