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ㄴ.ㄴ거슨 샹하귀쳔이 다 보게 홈이라…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체를 채택한 독닙신문 1896년 4월7일 창간호 논설에서 한글, 그것도 言文一致의 표기를 쓴데 대한 이유이다. ▲우리나라 신문의 변천은 우리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 했다. 구한말 開化期에는 시대적 분위기를 따라 계몽적 역할을 했고 1910년 일제침략이후는 암흑기, 언론활동은 없다시피 해서 개화기에 생겨난 신문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남은 것은 총독부 기관지 정도. ▲1919년 己未독립운동 이후는 몇개의 신문이 창간되었으나 이 역시 일제의 갖은 트집으로 강제폐간의 쓰라림을 겪었고 그 뒤에야 復刊되었다. 이어서 새로운 신문들이 등장하여 우리말과 글의 사용이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보도가 가능해졌다. 自由黨 독재정권때는 신문이 앞장서반독재투쟁을 했고 4.19와 5.16을 거치면서 사회의 公器로 자리를 잡았다. ▲올 2월말 현재 공보처에 등록된 일간신문은 1백13개. 이중 종합일간지가 75개이다. 일간지의 증가는 87년 6.29선언이후 급증했으며 신문지면은 60년대 8면에서 40여면으로 늘어났고 신문발행 부수는 1천4백여만부로 추산되고 있다. 신문계종사자는 전체언론계 4만8백여명의 54%를 차지해 2만명을 넘어섰다. 7일은 우리의 최초 민간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창간된지 1백년이 되는 바로 그날, 신문의 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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