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金大中총재와 자민련 金鍾泌총재가 16년만에 4일 단독회동을 갖는다. 지난 89년 중간평가문제로 당시 신민주공화당을 이끌고있던 JP가 국회평민당총재실로 DJ를 찾아간 적은 있지만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물론 지난 80년 서울의 봄 당시에도 두사람은 시국수습책을 논의하기위해 3~4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DJ는 재야인사 신분이었다.
JP는 당시 YS는 물론 DJ를 찾아가 우리 모두 시국분위기에 너무 고무된 것 같다 며 군부쿠데타를 우려하면서 양보와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JP는 두사람이 마치 대통령이 된거나 다름없었다 고 당시를 회고했다.
따라서 두사람이 정당대표로 단독회담을 갖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수있다. 지난 88년 4.26총선으로 與小野大가 형성된 직후 당시 평민당 金大中총재와 통일민주당 金泳三총재, 신민주공화당의 金鍾泌총재등 3金은 10여차례 만나 야권공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치적성향과 역정이 판이한 두사람은 90년 3당통합 으로 길을 달리한다.
두사람은 때로는 협력과 지원을 보내기도 했지만 때로는 색깔론과 보수논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등 이중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JP가 지난해 2월 민자당을 탈당, 자민련을 창당하고 6.27지방선거에 뛰어들자 DJ는 지역등권론 을 내세우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했지만 지난 4.11총선에서DJ는 JP에게 쿠데타의 원조 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고 JP역시 DJ를 대통령병환자 라고 비난하는등 시기와 사안에 따라 극단을 오갔다.
결국 5.16이후 35년동안 不可近 不可遠 의 관계를 지속해온 두사람이 제1,2야당총재자격으로 야권공조방안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여권의 당선자빼가기로 형성된 현시국에 대한 兩金의 인식에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徐明秀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