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지탐방-달성군 가창면 우록

대구도심에서 그리 멀지않은 달성군가창면 우록리.

5백여년전 임진왜란이 전국토를 전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와중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사연을간직한 곳. 우록동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당시 조선문물에 대한 경외심과 침략전쟁에 대한 회의끝에 전투수행을 포기하고 조선에 귀화한 왜장 '사야가'가 평화정신을 구현하고 그의 후손들이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 가창쪽을 향하면 자연은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늘 의연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산들이 여름처럼 푸르름이 여전하고 수확을 끝낸 논과 밭 들판은 그 거대한 몸집을 웅크리지않고 냉혹한 겨울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따라 청도쪽을 향하다 오른편으로 빠지는 길에 빼쪽 고개를 내민 표지판 하나.

'우록 유료낚시터'라 쓰인 이정표를 따라 다시 2km를 가다보면 녹동서원이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슴과 벗하여 노는 곳이라 하여 우록(友鹿)이라 했던가.

우록은 지리산 산간마을을 연상케하는 풍경으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그러나 마을 초입 산등성이는 채석작업으로 흉물이 돼버렸고 송전탑 무너기가 마을 한 가운데를가로질러 시골정경을 어지럽히고 말았다. 인간의 무지한 횡포와 편리만을 추구하는 문명의 이기가 막 피어나는 아름다운 상념들을 무참히 깨버린다.

하지만 시골은 여전히 시골.

보기싫은 것들은 눈을 감으면 그만이고 아름다운 것들은 보면 볼수록 감칠맛이 더해지는 법이다.우록은 임진왜란의 모진 풍상이 새로운 전설로 자리잡은 곳.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해 사야가는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보에게 투항, 조선에 귀화한뒤 조총및 화약제조비법을 조선에 전수한 공로로 선조에게 성명과 자(字) 관향(貫鄕)을 하사받았다.이후 사야가는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이란 조선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슬하에 5남1녀를 두어 오늘날 후손이 5천여명에 달한 우록김씨의 시조가 된다.

전쟁이란 인간성을 말살하고 전장터에 나서는 모든 이들을 집단적 광기로 내모는 괴이한 마력을지니고있기 마련이다.

합리적 이성과 인간존엄의 순수가 벼랑으로 몰리는 전란의 참담한 상황에서 22살의 혈기방장한일본장수 '사야가'가 내린 의로운 결단은 마침내 우록김씨 탄생의 장엄한 사연이 되고만다.지난 70년대까지 우록에는 80여세대의 우록김씨들이 더불어 살며 집성촌을 이뤘으나 상당수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또 전원주택바람으로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집성촌의 명맥이 점차 사라지고있다.모화당 김충선을 추모하기위해 정조13년(1789년) 세운 녹동서원은 뒤편 삼정(三頂)산을 길게 이어지른 대밭이 장관이다.

또 서원앞에 멀리 굽어다 보이는 삼성(三聖)산은 그윽한 향수가 절로 배여온다. 정면 5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강당은 소담스런 멋이 있다. 각 기둥에는 '백록북심다사래집(白鹿北深多士來集):백록 북녁 깊은 곳에는 많은 선비들이 몰려든다'등 여러 한문문구가 걸려 눈길을 끈다. 전체 면적이 6백여평인 이 서원은 서원규모로는 협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으나 고고하고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느끼는 곳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녹동서원은 188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는 수모를 겪다 1914년 다시 세워졌다.이후 지난 72년 서원규모를 확장하기위해 우록동 596번지에서 약 1백m떨어진 곳으로 이전 증축되었다.

김충선이 이땅에 정착한지 4백년 뒤인 지난 92년 일본인들에 의한 새로운 역사조명이 이뤄졌다.일본사가들은 광기어린 일본침략사에서 평화를 지킨 젊은 일본청년이 있었노라고 자랑한다.일본 국내 방송매체를 통해 김충선은 평화정신은 널리 홍보됐고 이후 녹동서원을 찾는 일본인들이 해마다 늘고있다.

올해들어서만도 5백여명의 일본탐방객들이 녹동서원을 방문했다. 또 일본 지식인들을 중심으로김충선 추모기념사업을 위한 모금활동이 활발히 전개중이다.

그러나 4백년전 평화를 사랑했던 한 젊은이를 추모한들 죄없는 생명을 앗아간 일본의 과오가 고쳐질 수 있을까.

오히려 평화운운하는 일본사람들의 호들갑이 그들의 호전적인 역사마저 미화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일본사람들의 수다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록은 임진왜란의 깊은 사연을 고히 간직한 채 말없는 겨울을 보내고있다. 〈柳承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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