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비뚤어진 시각이 늘 따라 다니는 사회, 불평등한 교육기회를 마치 큰 배려인 양 뽐내는 나라, 선거철이 되면 장애인 복지를 외쳐 대지만 표만 받고나면 잊어 버리는 정치인. 세상은산 자의 잔치, 성한 자만의 잔치인가.
결국 장애인은 스스로 서지 않으면 어디서도 생존의 길을 찾을 수 없다. 살아가는 것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적어 땅으로 기고 몸을 짓이기면서 스스로의 생존을 쟁취해야 한다.그러나 마음만은 수천억원을 가진 사람보다 '순백'이다. 어린시절 사람들이 꿈을 먹고 살듯 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꿈을 꾸며 산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사회,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세상…'.
키가 1백20cm에 불과한 왜소증 아버지, 왼팔-왼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뇌성마비 어머니, 첫돌을 지나면서 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왜소발육증에 걸린 딸, 이들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 고등학생이 된 아들.
대구시 수성구 수성1가 최종열씨(57). 그는 범어네거리 부근 동양투자 빌딩에서 구두를 닦는다.하루 평균 15켤레를 닦아 한달 벌이가 40만~45만원.
스물을 갓 넘겼을 때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느냐'는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 했다. 윗대에 아무도 난쟁이가 아니었는데 나는 왜 이런가? 그러나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했지. 최씨는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애를 '운명'으로 안아들이기 시작했다.서른 셋에 배필 성순덕씨(47)를 만나 딸 문숙(24)을 낳았다. 돌이 될 때까지 아무 탈없이 자라던문숙이가 사흘동안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왜소발육 증세를 나타냈다. 돈 몇푼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버려뒀던 탓.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딸까지? 내 멍에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줘야 하다니! '이중장애'!
막내 아들 준영이(17)도 혹시 문제가 생길까 숨을 죽였다. 문숙이가 겪었던 증상이 나타날까봐 몸에 열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병원으로 내달렸다. 한달, 일년 번 돈을 쏟아도 '이 자식만큼은 그렇게 만들 수 없다'는 집념으로 공을 들였다.
신천변 하천부지에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최씨 가족은 가족끼리만 모여 있을땐 더없이 단란하다. 최씨는 구두를 닦고, 불편한 몸으로 파출부를 하는 부인 성씨가 35만여원을 벌어 가계를 꾸린다.
1백10cm의 작은 키로 걸음걸이가 다른 사람 반밖에 안되는 딸 문숙씨. 보통 아이들과 동성초등-신명여중-남산여고를 함께 다녔다. 여고시절 반에서 5등 안팎의 좋은 성적을 보여 대구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했고 지난 2월 졸업했다.
아들 준영이도 학원 한번 안다녀 보고도 중학교 때 반에서 3-4등을 유지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버지와 누나가 자라지 못한 것을 되갚기라도 하듯 고1인 준영이는 벌써 1백75cm의 장신이됐다. 부모형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했으나 고교에 들어간 뒤 달라졌다.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한 것일 터.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키는 한국 최고의 신문기자가 되는 게 꿈이다. 올 초경북고에 입학한 뒤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 되지만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한다.오히려 대학을 졸업한 문숙씨 취직 문제로 가족 모두가 침울해 있다. 한국통신 필기시험에 붙고도 면접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상처가 깊었다. 성장과정에선 장애를 꿋꿋하게 이겨냈는데 어른이 돼 새삼 좌절하다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최씨 부부는 딸 문숙이와 아들 준영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 남들과 같이 사회를 위해 힘 쏟는 동량이 되길 바란다.
장애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웃이나 친지들이 경조사 때 최씨 가족들만 쏙 빼버리는 것은 이제문제 삼지 않는다. 왜소증 부녀가 길을 걸을 때 어린 꼬마를 데리고 가던 아주머니가 "저것 봐저것 봐"하며 손짓 하는 것에도 이제 만성이 됐다. 다른 사람눈 때문에 가족 전체가 함께 외출하지 못하는 것도 참을 수 있다. 뿔뿔이 흩어져 바깥바람 쐬는 것에도 익숙하다. 장애를 부끄러운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장애인이기때문이다.
"장애인으로서 들풀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몫이라면, 이 사회는 우리 자식들에게 최소한 배움의 기회와 사회 참여의 장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동전 한닢 던져주고 구석으로 내모는 일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가족의 주부 성씨 눈에 이슬이 맺혔다. 불편한 팔과 다리가 조금씩 요동치고 있었다.〈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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