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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누명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판사가 강도상해란 죄명으로 조선인을 재판한 후 작성한 한문과 일본어가 섞여 있는 판결문을 보게 되었다.

그 판결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피고인은 직업없이 무위도식하는 자로서 일찍이 도둑떼의 괴수인 오○○의 휘하에서 도둑질을일삼다가 사건당일 모씨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요구, 집주인이 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가져간곤봉으로 무수히 난타하여 집주인에게 수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혔다. 주문 사형' 기록을 보면 이 피고인은 얼마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것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이 피고인은 해방후 독립유공자가 된다. 판결문에 언급된 오모씨의 후손들이 억울하다며사실을 바로잡아 줄 것을 정부에 호소했고 조사결과 오씨는 도둑떼의 괴수가 아니라 조선독립 운동을 벌였던 단체의 대표로 확인됐다. 또 사형당한 피고인의 행위도 강도행위가 아니라 당시 갑부로 소문난 피해자에게 독립자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폭행사건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사형당한 피고인은 국가유공자로 추서됐다.

일제가 덧씌운 조작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명예를 찾았다니 다행이다.다만 애달픈 일은 당시 형이 집행되고 나서 주검을 인수해가라는 통보에도 가족들은 혹시 해가있을까봐 가지를 않아 주검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 후손들은 선조의 혼령을 외롭지 않게 하기위해 어디에 묻혔는지를 찾아 헤매고 있으나 도무지 알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희생정신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가슴에 민족자긍심으로 흐르고 있으니 그의 혼령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얼마 있지 않으면 광복절, 우리모두 다시한번 억울하게 숨져간 독립유공자의 명복을 빌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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