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제 더이상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다.
공존과 개방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이 드디어 북녘땅에도 불기 시작했다. 분단이후 최초로 한국 정부대표및 근로자들이 북한땅에 상주하면서 경수로 건설이라는 남북 최대의 역사(役事)를 만들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경수로사업이 남한의 주도적 역할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으면서도북미간의 구도로만 몰아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불어닥칠 변화의 바람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허 종 북한외교부 순회대사는 착공식 기념연설에서 "핵문제는 조(북)-미 사이의 역사적 불신과비정상적인 관계로 생긴 냉전의 산물"이라면서 "조-미 기본합의문의 주요사항인 경수로제공이 어떤 경우에도 부당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을때 동시이행 원칙들이 준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수로사업을 철저하게 북한과 미국사이의 관계에서 이뤄진 것으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김병기 북한 경수로대상사업국장은 "이 사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KEDO사업이므로 어느 나라가돈을 많이 내든지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며 "그것은 단지 KEDO 내부의 문제"라고 대북경수로사업에서의 한국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고 했다.
김국장은 또 "경수로건설은 미국과 KEDO가 우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다"며 "우리는 흑연감속로 동결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허세를 부렸다.
북한 안내요원들과 착공식 행사 참석자들이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반응도 허대사나 김국장의 말과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치 어느 연극대사를 줄줄 외워서 읽는 것처럼 북한 정부관계자나 일반 주민, 안내원들의 경수로사업에 대한 입장은 한결같이 북미관계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신포 금호지구에서 만난 북한일반 주민들은 남한이 경수로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기자단과 동행한 북측안내원은 경수로를 남한이 지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고 은밀하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남조선이 우리보다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내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세관원들이나 접대원들의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잠시 얘기를 나눈 한 접대원은 "정치적인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민족이 좋은 사업을 한다니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로부터이처럼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이 나온 것은 이미 8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건설작업을 하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는 기자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을때에만 밝히는 일종의 '고해성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이거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경우에는 이들도 경수로 사업이 미북간에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된 사업이라고 강변하는 등 철저하게 이중적이다.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기본적으로 남북대결에서 북한이 뒤처졌다는 인상을 주민들에게 주게되는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염두에 두고 경제제재 완화와 식량지원 등을얻어내는 등 보상을 받아내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이와함께 남한 근로자들이 북한땅을 활개치고 다닐때 생길 파급효과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느껴졌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이곳 금호지구를 자유로이 활보하는 당당한 모습의우리 근로자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해질 남한의 실체는 북한 수뇌부들에게 큰 골칫거리일 것이다.게다가 5천달러가 넘는 월급과 자가용 등 북한주민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근로자의 풍족한생활상을 보게 되면 북한 주민들의 괴리감을 증폭시키고 체제불만을 충동질할 것으로 북한당국자들이 우려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있다.
이제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수천명의 우리 근로자들이 북적거리게 되면 북한의 이중적인태도도 곧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근로자들이 작업을 시작한지 불과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북한주민들과 안내원들이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만큼 한국의 첨단기술이 북한땅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북한 전역으로 알려지는 것도, 북한이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것도,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북녘땅의 외딴 지역인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서 조용하게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앞으로 남북관계에서의 커다란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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