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CD시대에 생겨난 LP전문점

"올드 팝… 올드 재즈… 추억이 흐른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올드 팝, 올드 포크, 올드 가요, '올드'에 아스라한 향내를 느끼며 그 그림자를 찾아 나선다.이들은 프랭크 자파나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 그리고 '물 좀 주소'의 한대수, '아침 이슬' 양희은을 찾고 수많은 CD를 제쳐두고 이젠 '한물 간' 매체인 LP에 서린 그들의 흔적을 뒤진다.

조악한 옛풍의 앨범 자켓을 어루만지며, 레코드판을 애면글면 닦으며 지나간 희미한 옛사랑처럼 LP시대를 그리워한다.

CD시대에 생겨난 LP전문점. 향수에 젖은 로맨티스트 마니아들의 새로운 명소다.93년도 처음 대구에 선을 보인 LP전문점은 이제 5-6군데로 늘었다. '애시드''우드맥''올맨'과남문시장 근처 '사계', 본리동 '르네상스'.

대구에서 최초로 생긴 '애시드'. 5평 남짓한 가게에 3천장의 LP들이 양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현란한 음악에 CD와 테이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음반가게와 달리 오랫만에 보는 '레코드 가게'다.옛날에 대한 추억이 묻어난다.

올드 가요, 록, 재즈등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주인 박준영씨(34)는 "처음 문을 열었을때는찾는 사람들이 극소수였는데 요즘엔 하루 10명 이상씩 찾아온다"고 했다. 영화 '접속' 이후 대구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늘었다. 영화속에 나오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반도 없어서 못판다.지난해 문을 연 '우드맥'에도 단골 손님들이 50여명 정도. 고등학생에서 50대 중반까지 소비층도다양하고 최근들어 카페 주인들도 많이 찾는다. LP 음반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용하기도 좋고희귀한 탓에 손님들에게 색다른 맛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제3세계 음악에 대한 비중이 높아가고 있다. '우드맥'의 주인 이범동씨(29)는 "여기를찾는 마니아들이 대부분 영미음악을 섭렵했기 때문에 색다른 음악을 찾다 보니 대안으로 제3세계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이태리 프랑스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칠레, 최근에는 아프리카 이스라엘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올맨'은 아예 '제3세계 음반 전문'이란 간판까지 걸었다. 60~70년대 활동한 그리스의 민중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아르헨티나 여가수 메르세데스 소사, 칠레의 빅토르 하라등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가수의 음반이 인기다.

LP전문점의 생명은 희귀성이다. 가격 결정도 초판이냐 재판이냐, 앨범 자켓이 오리지널이냐 변형된 것이냐에 따라 가격차가 많이 난다.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세노야 세노야'가 수록된 71년 데뷔앨범의 경우 초판이 3만원 이상인 반면 재판은 5-6천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귀한 것은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애시드'와 '우드 맥'의 경우 가장 비싼 LP로 70년대 활동한 이탈리아 가수 안젤로 브란듀아르디의 앨범을 꼽았다. 각각 12만원과 16만원. 그 보다 비싼것도 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수록된 초판 앨범은 24만원. 70년대 초반 소매가를 약 5백원으로 잡으면 무려 4백80배에 달한다. 없어서 못판다.

'우드맥'의 이범동씨는 "비싼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다. 수입된 원판이 2만-10만원, 국내라이센스가 3천원-7천원, 가요음반이 2천원-6천원선. 비틀즈의 음반도 7천원 안팎이면 살수 있다고 했다.

LP가 희귀성으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대한 조심스런 비판도 있다. 음악평론가 서석주씨(48)는 "희귀, 음질 위주로 음반을 구하는데 되도록이면 좋은 연주의 명반을 구해야 된다"고 했다.LP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심성은 일단 향수다. 마니아 이은주씨(26)는 "음반을 닦고 카트리지를들어 음반에 올리다 보면 저절로 긴장이 되고 그래서 음악을 듣는 마음도 숙연해진다"고 했다.또 앨범 자켓에 대한 그리움도 많다. 누군 "자켓에도 음악이 흐른다"고 했다.

결국 CD의 간편함이 따라 올수 없는 공간. 애써 불편함을 감수하며, 다소의 잡음조차 사랑스러운그 어떤 것이 LP에 있다는 것이다.

'음악사랑'이라고 일단 규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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