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황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정이지만 아직도 무주공산(無主空山)인 3억의 시장만 떠올리면다시 힘이 솟습니다. 이제 정말 1달러라도 더 팔아야지요" ㅇ그룹 모스크바지사 ㄱ과장의 이야기다.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속에서 얼어붙은 국내 상황과 달리 러시아와 구 소련 지역을 뛰는 한국상사맨들에게 지난 97년은 아쉬움과 분주함 속에서도 뛰고 또 뛰었던 한해였다. 96년 러시아에 18억6천만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 1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낸 한국은 급성장세가 주춤해진 97년에도10월말 현재 14억6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려 러시아시장이 '효자'임을 입증했다.지난 92년과 비교해 5년만에 수출이 무려 17배나 증가했다. 주요 교역국 중 유일하게 흑자를 보고있는 시장이 바로 러시아이다.
컬러TV(시장점유율 38.2%%), 비디오(32.9%%), 금전등록기(37.9%%), 비디오테이프(16.5%%)는 러시아 시장에서 일본등 경쟁국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자동차는 미국과 일본의 추격을 뿌리치고 독일(22%%), 스웨덴(10.3%%)에 이어 세번째(10.2%%)로 많은 실적을 기록했다. 라면에서 초코파이에 이르기까지 각종 식료품도 비교적 동양적인 러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시장을 급속히 넓여나가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한국제품의 활약은 러시아 시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일본등 경쟁국에 앞서 과감히진출한 '선점효과'에 힘입었다.
"러시아에서는 우리 제품이 일제나 미제와 마찬가지로 외제(?) 대접을 받고 있더군요" ㅅ전자 직원의 말이다. 서방의 상품 이름을 미처 꿰뚫지 못하고 있던 러시아 소비자들은 삼성 TV나 대우자동차를 소니TV나 BMW와 차별하지 않았고 '브랜드의 명성'이 아닌 품질로서 평가했다.우리제품이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선 90년대 이후에 본격 진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러시아 시장에서는 과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시장에서 겪었던 "한국제는 싸구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시달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광고등 마케팅 덕분에 상품과 기업의 인지도가 국가인지도를 앞질러 "이 비디오를 한국 기업이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샀다"는 식의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해마다 급상승하던 러시아 수출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고비를 맞게됐다. "지금까지 비교적쉽게 장사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우전자의 장영근 과장(37)은 러시아 시장을 둘러싼 싸움은이제부터라고 강조했다.
최근 러시아 수출의 선봉장격이었던 가전제품의 판매 부진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정부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통관을 까다롭게 하는 등 새로운 무역장벽과 함께 치열해진 러시아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기업이 통관장벽을 피해 직수출이 아닌 핀란드등 인근국의 현지법인을 통한 우회수출을 늘렸기 때문에 아직은 통계상으로만 수출이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러시아 시장은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러시아의 자국산업 보호 추세는 인구 1억5천만, 구 소련 전체를 따지면 3억이 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황금시장을둘러싼 경쟁이 더한층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의 가능성은 경제개혁을 시작한 후 해마다 침체를 거듭하던 경제가 최근들어 활기를 찾고있는 것과 비례해서 더욱 높아지고있다.
연 6년째 감소하던 국민총생산(GDP)은 97년을 고비로 1%%미만이지만 플러스성장으로 돌아섰다.물가와 환율도 안정되면서 외국자본의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으며 덩달아 러시아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적으로 자동차시장이 포화상태라지만 러시아에서는 2000년까지 연간 판매대수가4백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최근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프랑스의 르노, 미GM의 자회사인 오펠 등이 다투어 러시아에서 대규모 합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러시아 시장에서 소비재는 모두 유망 품목"이라는 것이다. 소련 시절 중화학공업 우선정책으로 경공업이 취약한데다가 경제개방의 홍역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러시아 상점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생필품은 수입품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로 팔았던 것은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 대기업형 제품이었지만 사실 러시아 시장은 중소기업들에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KOTRA 서기원 과장(36)은 아직 정돈되지 않고 다소 어수선한 러시아 시장
이야말로 '기회의 땅'이라고 표현한다.
각종 의류 등 섬유제품, 가죽제품, 인스턴트식품, 문구류, 건축자재류, 타이어등 자동차부품, 보일러, 기초의약품 등이 러시아 시장에서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들이다. 러시아의 경제개혁이진행될수록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러시아 시장의 팽창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러시아 시장이 매력적인만큼 다른 지역과는 다른 위험과 특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까다로운 통관과 세금문제 등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아직 시장경제가 정착되지 않은만큼서방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시장 관행도 적지 않다. 러시아의 법규와 상거래 관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러시아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기르는 일이 가장 큰 관건"이라는 KOTRA 서과장의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아직도 러시아는 제도나 법규보다는 관행과 인간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거래선이나 파트너와의 신뢰구축은 물론 현지에 인맥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시장은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성급하게 덤벼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