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품종 소량'으로 봉제시장 뚫어라

"봉제소재로서 1백% 폴리에스테르 직물은 전세계에서 배척되고 있습니다. 1백% 폴리에스테르 직물만 생산하는 업체는 구조조정으로 정리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10개의 기본 아이템만으로 80년대말부터 10년을 버틴 것으로 폴리에스테르의 직물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봐야지요" (홍콩 삼수이포 직물시장의 한국인 에이전트 상하유한공사 한상철 사장) "홍콩의재수출 시장인 광저우의 라우샤 시장은 이제 끝장입니다. 중국 자체의 섬유생산시설이 엄청나게 늘어나 이들 공장을 끼고있는 상해의 커차우 시장, 광저우시장도 위축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 섬유만을 취급하는 라우샤 시장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이화상사 김명식 과장)

"지금은 시장상황이 나쁘지만 다시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도박심리'로 버티는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 5년이상 홍콩시장의 섬유수출 불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대구 섬유산업은 자연적인 구조조정으론 부족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인 강제 구조조정에 나서야 살 수 있습니다" (한국인 에이전트 아크로스 인터내셔널사의 권태승 사장)"한국정부가 섬유산업 발전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섬유업체 역시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해외마케팅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있습니다. 아예 마케팅이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90년대 초반까지 워낙 시장상황이 좋아 마케팅에 신경쓰지않아도 좋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합성유한공사 총경리 로버트 찬)

"공급과잉에 따른 덤핑경쟁이 자제돼야 합니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국 섬유의 장래는 어둡습니다. 중국의 제직 및 염색기술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만큼, 중국이 쉽게 복사할수 없는 아이템을 수출해야 롱런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섬유수출업체의 납기지연, 가짜 선적서류로 네고 등 '무신용 얌체 상혼'도 시정돼야 합니다"(라우샤 시장 브로커출신 바이어채널 인터내셔널 디벨롭먼트사의 찬혼룽)

"대구지역 섬유업체 오너들은 지금까지 얼마를 버느냐 보다 얼마를 생산하느냐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고합과 효성이 워크아웃과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구 산지의 오너들이 경영마인드를 바꾸지 않으면 서울 무역부와 해외지사 직원들이 아무리 뛰어도 안됩니다. 가격에 품질을 맞추니 클레임도 자주 걸립니다. 하자있는 제품을 팔려다 보니모 회사의 해외지사 직원은 매일 우황청심환을 먹고 바이어들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봉제에이전트 비코사 이규식 사장)

홍콩에서 한국 섬유를 취급하는 사람은 대부분 홍콩시장이 완전히 거덜났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역 섬유수출업체들은 홍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고 있다.이유는 무얼까. 홍콩시장의 매력은 다른 시장보다 자금회전이 빠르고 시장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약에서 선적까지 두바이 시장이 적어도 20여일, 터키시장은 30여일이 걸리는데 반해 홍콩은 빠르면 3~4일이면 선적까지 마쳐 금방 수출대금을 챙길 수 있다.또 지리적으로 가까워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도 홍콩시장이 가진 장점이다.그러나 지난해 부터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한 홍콩 섬유수출시장은 올들어 거의 지난해의 절반수준으로 수출물량이 줄었다. 이것도 공식통계치일 뿐이다. 동국무역 홍콩지사의 서수영대리는 "어떻게 통계를 잡았는지 모르지만 홍콩내 한국 섬유수출관계자들은 올해 대홍콩 수출물량을 지난해의 10분의 1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지역 섬유업체들은 홍콩 시장이 지닌 여러 장점때문에 헐값에라도 일단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섬유제품은 이제 홍콩시장에서 더이상 설자리가 없는가. 합성유한공사의 로버트 찬은 "그래도 길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량생산 제품은 끝장났지만 봉제용의 다품종 소량 아이템과 품질관리가 잘된 제품은 아직 시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포업유한공사의 왕만사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왕사장은 "봉제시장은 어차피 주문량이 소량일 수밖에없다"며 "대구 산지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구축하면 리스크 분산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 상하유한공사의 한상철사장 역시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몇천 야드의 소량주문에도응하는 것이 신규 거래처를 갖는 비결"이라며 "봉제용은 대폭직물이 선호되는 만큼 소폭위주인 대구산지의 생산시설도 개체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제 에이전트 비코사의 이규식사장도 "봉제용 원단 값이 일반 원단보다 훨씬 높다"며 "봉제용 원단은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기 때문에 바이어들이 가격에 따라 쉽게 거래선을 바꾸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홍콩직물시장 대신 봉제시장을 노리라는 것이다. 홍콩 봉제시장 역시직물시장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불경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직물시장보다는 형편이 낫다는 것이다. 홍콩의 의류업체 차이나 포인트에 원단거래를 중개하는 비코사의 이 사장은 "삼수이포 직물시장이 위축되면서 봉제쪽으로 눈돌리는 업체나 에이전트가 많다"면서 "그러나 대량수출에 길들여진 거래관행을 소량주문도 소화할 수 있는 체질로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나 포인트가 봉제품을 납품하는 영국 버튼그룹의 극동지역 바잉 에이전트 아카디아 그룹의 소싱매니저 애니타 추는 "폴리노직(레이온의 일종)과 텐슬제품에 관심이 많다"며 의류업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콘템포 패션의 이사 패니 쳉은 "미국 의류시장이 물량은 늘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떨어져 시장이 매우터프하다"면서도 "공장은 24시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쳉은 이어 "월마트, K마트 등 미국 저가 의류시장을 공략하는 만큼 한국산 폴리에스테르에 관심이 많지만 야드당 2달러이상이면 곤란하다"면서 "대미수출쿼터 때문에 동남아 여러 지역에 사무실을 두고 수출주문을받고있다"고 밝혔다.

홍콩특수가 사라진 지금 지역 섬유수출업체들은 새로운 대량 수출시장을 찾고있다. 중남미와 중동지역이 홍콩의 대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등 일부 시장은 이미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있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상도의도 체면도 모두 벗어던진 채 우리 업체끼리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6월말 두바이 시장은 아수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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