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예술단의 '애니깽'

최근 몇년사이 우리 연극계에 뮤지컬 공연이 부쩍 늘었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이 큰 비중을차지하는 연극이다. 그래서 연극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비교적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설령 내용이 재미없더라도 노래와 춤만으로도 즐거울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객 심리를 고려해서인지 뮤지컬 중에는 무거운 내용보다는텔레비전 멜로드라마 정도의 가벼운 내용이 많다.

그러나 뮤지컬이라고 모두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고전 비극 이상으로 심각한 내용의작품도 있다. 10일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서울예술단의 '애니깽'이야말로 그 좋은예이다. 김상열이 쓰고 유경환이 연출한 이 작품은 구한말 국제 노예 암매상에게 속아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간 1천여명의 우리 동포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90년 동안이나 묻혀있던 비극적 이민사의 한 부분이 그 처절한 모습의 일단을 드러내는 순간이라 하겠다.그들은 독을 내뿜는 가시 투성이의 거대한 애니깽과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며 또한 짐승보다못한 노예생활에 진저리를 치며, 조국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절규한다. 그래서 네 명의동포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뱃길을 잘못 들어 쿠바에서 밀입국 혐의로 강제노동형을 받는등 갖은 고초 끝에 그중 두명이 조국에 도착한다. 실로 25년만의 감격어린 귀향이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줄 조국은 이미 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비극성을 한층 부각시키기 위해 작품은 2중구조를 띠고 있다. 즉 그나마 조국이라는유일한 희망 때문에 극한 상황을 감내하는 동포들과 무력하게 무너져가는 조국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는데 동포들의 희망과 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관객들의 가슴은 더욱 미어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조선의 몰락 부분이 엄밀한 추상을 거쳤다기 보다는 여러 작품에서 막연히제시되는 도식적 역사 나열에 그쳐 동포들의 장면과 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점은 못내 아쉽다.

또한 대구 시민들에게 모처럼 무게있는 뮤지컬을 선사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역동성이부족한 격투장면, 쇼 무대 이상으로 남용된 팔로우 핀, 답답하게 늦은 무대 전환등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무대전환에 있어 기계장치사용이 불가피하다면 육중한 세트는 포기하는것이 옳다. 왜냐하면 내용이 무거울수록 더욱더 뮤지컬 특유의 속도감을 지녀야 하는데 장면 전환에 시간을 끌다보면 관객들의 감정 고조를 차단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세곤〈가야대 연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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