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 1년 지금 우리는…

제2금융권 업체에 근무하는 박모씨(36.대구시 북구 복현동)는 월급이 나올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지난해 2백만원이 넘던 월급(상여금 포함)이 지금은 1백20만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지난해말 IMF가 오기 전까지 박씨 가족은 크게 여유있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삶을 즐기며살았었다. 박씨 부인(32)은 매월 7만원씩 내고 수영장에 다니며 건강과 몸매를 가꿨고 5세된 아들은 17만원씩 지출되는 유아원에 다녔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자가용을 몰고 야외로 가족 나들이를 나가 외식하는 경우도 잦았다. 계절이바뀌면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주기도 하고 자주 싫증을 내는 장난감도 보채지 않게 사주곤 했다.박씨 자신도 지갑에 항상 10만~20만원이상씩 현금을 넣어 다니며 1주일에 2, 3차례 술을 마시는가 하면 아내를 위해 CD나 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의 생신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에도 선물을 들고 가거나 조카들에게 용돈도 꼬박꼬박 주었다. 거래처의 웬만한 사람들 경조사에도 부조금을 빠뜨리지 않았다.1년이 지난 지금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박씨 부인은 수영장 다니는 걸 그만두었고 아들도 더이상 유아원에 다니지 않는다.

아이들의 옷도 큰 조카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게 하고 장난감도 교환해 이용하도록 했다. 기름값과 음식값이 아까워 가족 나들이와 외식은 거의 하지 않게 됐고 대소 경조사에는 최소한의 성의표시가 고작이다.

전에는 4천~5천원짜리 점심을 사먹는 것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가격이 1천~2천원 싼 분식집이나주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장생활 19년째인 회사원 이모씨(46.대구시 달서구 상인동)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역시 혼자 버는 형편인 이씨는 월급이 30%가량 깎여 매달 1백50만원 정도를 받는다. 고1년생 딸과 중2년생아들이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등을 다녔으나 IMF와 동시에 그만뒀다.

계원끼리 부부동반으로 야외나들이를 자주 다녔으나 요즘은 조촐하게 집에서 모임을 가지는데 그나마 횟수는 크게 줄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생기면 자신의 차를 몰려 하기보다 되도록 남의 차를 얻어타고 가려한다. 이씨는 지금은 그런대로 생활이 꾸려지고 있다고 여기나 자식들이 대학에 다니는 2, 3년뒤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최모씨(34.대구시 동구 효목동)의 경우는 더욱 딱하다. 전에는 잔업이 많아 수당등을 합해 매월 1백20만원 이상씩 월급을 지급받았으나 지금은 80만~90만원정도받는데 그치고 있다. 최씨는 출퇴근만 할뿐 동료들과 소주를 마시는 자리도 되도록 피하고 있다.전에는 가요주점등 고급 술집에도 출입해보았으나 지금은 어림없는 이야기이다.큰 재산없이 월급을 쪼개 생활하고 저축도 하던 봉급생활자들이 IMF의 터널속에서 힘겨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인당 소득 1만달러시대를 맞아 이제 생활을 즐겨볼까 하다가 이전보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게된 셈이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느낌에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실직자들에 비해 그래도 낫지 않으냐며 자위하고 살아간다.

요즘 집에서 육류 반찬을 줄이고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다는 박씨는 "야채 반찬을 주로 먹으니건강에는 오히려 좋은 것 같다"며 허허 웃는다.

〈金知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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