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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을 지나면 비교적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많은 길이었다. 청천 역사에 내리면 검은 콜타르를칠한 낡은 화물 창고가 우리를 맞이한다.

시골 역 한낮의 정적을 깨트리며 완행 열차가 지나고 건널목도 없는 철길의 건너편에 판자 집 가게 하나. 울타리 밖을 넘치도록 나뭇가지에 흐드러지게 달린 사과를 보며 오솔길을 걸어 이십 여분, 우리는 자갈밭이 넓게 펼쳐진 강변에 이르게 된다.

미루나무 숲 사이로 포장 집들, 강가엔 빈 거룻배 한 척, 강둑 너머의 압량벌은 군데군데 야촌(野村)의 연기가 솟아오르고 잡풀들로 무성한 상류에는 아이들만 외로운 징검다리, 이십 수년이 지난아득한 기억의 풍경이다.

유난히도 고생이 심했던 의과대학 시절, 시험이 끝나는 주말이면 몰려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강변 언저리의 숱한 돌멩이를 날렸고, 과수원에서 고성방가 하다가 주인에게 쫓겨났던 일, 미팅때마다 어린 여대생 이곳으로 끌어와 분위기 잡던 일, 철로변 가게에서 소주 한병 나눠 마시고황량한 겨울 들판을 가로질러 경산 역까지 걸어갔던 일...

지금은 청천 유원지도 사라지고 옛 정취를 찾기란 무척 힘들지만, 어쩌다 차편으로 청천을 지날때면 문득 가슴이 설레고 예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것은 학창 시절의 막연한 향수 때문일까.

요즈음 IMF로 각박해지는 세태에 우울할 것 같은 옛 친구들에게 그 시절 미망의 그리움 하나 전한다. 올해는 이곳을 찾아 소주라도 한 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송훈〈강남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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