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는 문좌(文佐)이며, 호는 심산. 일경(日警)의 모진 고문으로 하체가 부자연스러워 '벽옹'이라 불리기도 했다. 본관은 의성.
1879년 동강(東岡) 김우현선생의 13대 종손으로 태어난 김창숙은 독립과 통일민족국가의 건설이란 민족적 대의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철저한 비타협의 선비정신으로 유학과 민족주의를 일치시킨 인물.
3·1독립선언 직후 영남과 충청 유림 137인 서명 독립청원서를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한 1차 유림단 사건, 독립자금 모금운동으로 제2차 유림단 사건을 주도했으며, 중국 북경, 상해 등지에서 김구, 이동녕, 이시영, 박은식, 안창호 등과 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해방후에는 신탁통치 반대투쟁, 남한 단독 총선 반대운동 등을 펼쳤고, 1951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 경고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62년 건국공로훈장을 받고 그해 8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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