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새로운 인간상

병아리가 다쳐 아랫배가 터지면 창자를 밀어 넣고 바늘로 상처난 부위를 꿰맨다. 그리고 나서 그 작은 부리를 벌려 약물을 입 안에 넣어준다.

이처럼 하잘 것 없는 생명도 도외시하지 않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은퇴한 전직 외과의사였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미담 한 토막이다.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이 험한 세상에서 옥같이 곱기만한 할아버지의 마음씨가 정녕 무지개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초등학교 아동들이 병아리를 사다가 살생도박을 했다는 기사를 읽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살생도박이란 고층건물에서 병아리를 강제로 땅바닥을 향해 다이빙시키는 잔인한 게임으로서 이 때 병아리가 죽으면 내 편에서, 살아있다면 상대편에서 내기에 건 돈을 주고 받는다는 지극히 야만적인 놀이이다.

생명경시풍조의 미친 바람이 순진한 어린이들 가슴에까지 파고들 줄이야….

언젠가 히말라야 원숭이의 새끼사랑을 텔리비전에서 보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새끼가 병들어 죽었는데도 몇달 동안이나 가슴에 안고 다니는 어미원숭이의 갸륵한 모성애를 무슨 말로 어떻게 찬미해야 할까.

미라가 될 정도로 가죽만 남은 새끼를 자장가로 잠재우듯 이리저리 품에 안고 다니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숭고한 모성애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숨거두기가 바쁘게 기다렸다는듯 산에 내다 버리는 우리 인간들의 작태가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어린 자식의 손가락·발가락을 도끼로 찍는가 하면, 부모의 재산을 독식하기 위해 방화와 교살도 서슴지 않는 단말마적인 악의 끝과 꼬리가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루가 다르게 인간성이 상실돼 가고 있다. 빚을 갚지 않는다고 채무자의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한 샤일록은 비록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작중인물이긴 하지만, 제2·제3의 샤일록이 이 땅에서도 독버섯처럼 퍼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상처받은 병아리를 어루만지듯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할 때가 바로 이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서병원·한방병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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