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일 폐쇄 대구 연초 제조창

한국담배인삼공사 대구제조창이 1921년 조선전매국 대구지방전매국의 설립과 함께 업무를 개시한 지 78년만에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해방 이후 현재까지 대구창에서 제조한 담배의 생산수량은 210억여 갑. 길이로 따지면 서울과 부산을 1천1985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23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매사의 산증인인 대구제조창의 모태는 1906년 국내에 진출한 일본의 '동아연초주식회사'.

동아연초는 대구(1909년), 서울, 전주, 평양 등 4곳에 공장을 세우고 궐련을 만들었다.

1921년 조선총독부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연초전매제를 실시, 대구제조창은 민간 연초제조공장에서 총독부 직영으로 흡수되면서 대구지방전매지국이 됐다.

처음 대구 동운동에 있던 대구제조창은 2층 목조건물로 전국 4개 공장 중에서 시설이 제일 열악했다.

현재의 태평로로 옮긴 것은 1928년. 1921년 신축계획을 세운 지 7년만에 대지 1만5천평,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로 준공돼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구제조창은 창업 초기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직장문화 확립에 앞장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일 10시간 정시간제 근무와 공휴일제가 확립됐고 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한 공제조합 및 공영회가 조직됐던 것.

당시 직원 채용규정에는 '만14세 이상의 신체가 건강한 자'로 돼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이 수작업이어서 여공원이 적합했으나 시대상황탓에 여공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생산현장 여직원들은 또 작업과정에서 몸에 밴 담배냄새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대구제조창은 6·25전쟁으로 서울공장과 전주공장이 거의 전소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군수용과 민수용 담배의 유일한 공급처가 되기도 했다. 또 전쟁중의 유일한 세입원으로서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도 했다.

특히 인쇄시설이 없어 포갑지를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 흰 포갑지에 스탬프로 도장만 찍어 공급한 군수용 담배는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남아있다. 잎담배 경작지의 피해로 원료공급이 부족해 숙성된 담배엽이 아닌, 바로 수확한 잎담배가 담배원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공급이 턱없이 부족, 서울과 전주에서 피난온 종업원들을 보강, 2부제 작업을 강행하기도 했다.

전쟁중이던 52년 전매국이 전매청으로 승격되면서 대구지방전매청으로 이름이 바뀐 대구제조창은 동양메리야스기계제작소와 공동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연초권상기 '애국호'를 제작했다. 제작비로 당시 화폐 1억6천만원이 쓰인 것도 화제거리가 됐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진행되면서 전매사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구제조창은 61년 국내 전체 연간 제조실적 154억2천만 개비의 25%인 38억5천만 개비를 생산한데 이어 69년 60억개비, 76년 100억개비, 80년 120억개비를 돌파, 연초전매사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인 60년대에는 웃지못할 '생계형 비리'도 있었다.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생산된 담배를 조금씩 빼돌려 현 대구제조창 남문앞에 담배를 낱개로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다는 것.

대구제조창은 1980년 궐련기 보유대수 45대, 인원 1천200여명으로 제조창 설립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87년 전매청이 한국전매공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생산성 향상과 구조조정 계획으로 인력과 생산량이 매년 감소, 내리막으로 들어섰다. 인원은 88년 940명, 95년 550명으로 줄었고 저급담배 생산공장으로 전락했다.또 담배제조에 따른 악취발생으로 지역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85년 성서공단, 91년 월배공단, 92년 검단공단으로의 이전이 각각 추진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대구제조창은 지난 한해 83억개비의 담배를 생산했으며 올해는 지난 6월말 문을 닫기 직전까지 보유 궐련기 36대 중 21대를 운용, 26억9천만개비를 생산했다.

대구제조창 폐쇄로 앞으로는 '6'으로 시작하는 일련번호가 새겨진 담배는 볼 수 없게 됐다. 각 제조창은 고유번호를 담배에 인쇄하는데 신탄진제조창은 '1', 원주제조창은 '8', 전주제조창은 '5' 등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현재 남아있는 직원 135명은 새로운 근무지로 배치될 예정이며 오는 8일 퇴직 원로사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폐창식을 갖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구제조창은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李尙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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