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어느 월요일 오전, 한 늙수그레한 60대 후반의 할머니 한 분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료가 끝날 무렵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이 약을 먹을 때 한약을 함께 먹어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이미 한약을 지어놓고 먹을 결심을 한뒤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속시원하게 한마디로"네, 같이 드셔도 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 딱한 심정이 된다.
한약의 종류와 진단명, 그리고 부작용 여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런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한약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한약을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데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환자들에게 "그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머니 옆집 처자가 예쁜지 안 예쁜지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정밀과학이다. 그래서 한치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고, 이론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 그리고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측면 또한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의 규명에 있어서는 의사의 지식과 경험이 면밀하게 구사되어야 하고, 또 그 증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검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의사는 그런 기초위에서 약을 처방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환자들의 이런 질문에 의사들이 확실한 답변을 해줄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사고에 역행하는 사례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매년 연말이면 망년회를 하고 해가 바뀌면 신년회를 한다. 새해에 "당신 나이가 몇살이냐?"라고 물어보면 "설 쇠면 ~살"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월1일부터 구정사이에는 본인의 나이가 몇살인지도 확실히 모른다는 말이 된다. 망년회·신년회 등 일상적인 생활은 양력으로 하면서도 설은 음력으로 지내는데 따른 해프닝이다.
그뒤 그분이 다시 병원에 들렀을때 약을 한약과 함께 복용했는지 물어보았더니 이미 지어놓은 한약이라 먹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후에도 나는 진료실을 들어서는 많은 환자들로부터 "이 약 먹을때 한약을 함께 먹어도 됩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있고, 그럴때마다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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