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이낸스 파동 실태와 배경

파이낸스사들이 '도산 도미노'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삼부파이낸스에 이어 부산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청구파이낸스가 14일 영업을 중단했다. 대표 김석인씨를 비롯한 임직원들도 일제히 잠적,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청구파이낸스의 영업중단은 삼부파이낸스 양재혁 회장이 구속된 뒤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가 몰려 유동성 부족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양회장의 구속이 사설 파이낸스업계 도산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파이낸스사 실태

전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파이낸스사는 7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단기자금 취급 종금사들이 대거 퇴출당한 부산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파이낸스사가 설립된 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대구에선 지난 4월말 현재 52개사가 영업하고 있었다.

전국의 파이낸스사가 운용하는 자금규모는 1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금운용 방법은 베일에 가려져있다. 금융기관 대출이 쉽지않은 유흥업소와 급전이 필요한 부실기업, 영세 자영업자 등이 주요 대출처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파이낸스사도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출자한 여신전문회사와 일반 투자자들을 모집, 자금을 운용하는 사설 파이낸스사로 나눠진다.

금융당국이 문제시하는 곳은 물론 사설 파이낸스사들이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여신전문업체인 파이낸스사라고 할 수 없다. 외국의 파이낸스사처럼 출자금으로 대출하는 게 아니라 법망을 회피, 출자형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자금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설 파이낸스사들은 투자자를 주주로 대접하지 않고 예금자 취급을 하고있다. 투자자들 역시 '출자'가 아니라 고율의 배당을 주는 '예금'으로 알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설 파이낸스사들은 연 20~30%의 고수익 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마비됐던 지난해와 올초까지만 해도 연 50% 수익보장을 내건 회사도 있었다.

문제는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길래 고객들에게 고율 배당을 하고 자신들의 영업이익까지 남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올들어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대출경쟁을 벌이면서 대출금리를 한자릿수로 떨어뜨렸다. 이런 터에 파이낸스사들이 고금리로 자금을 운용하는 묘수가 있을 턱이 없다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고객돈으로 고객에게 배당하는 '외발자전거 영업'을 하고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 이를 위한 전형적인 영업수법이 점포를 신설, 신설점포 고객돈으로 기존 고객들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2월부터 4월사이 파이낸스사 실태를 조사한 금융감독원은 올 연말쯤 파이낸스사의 연쇄도산을 경고했다. 지난해말 대거 설립된 파이낸스 고객들의 투자금 만기가 올 연말에 집중돼있었기 때문이다.

올 연말쯤 터질 사설 파이낸스사의 유동성 위기가 앞당겨진 것은 삼부파이낸스 양회장 구속사건이 계기가 됐다. 14일 영업을 중단한 청구파이낸스도 대검의 삼부에 대한 수사착수이후 하루평균 20억원의 상환요구가 몰려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구파이낸스 대구지역 3개지점에서도 양회장 구속소식이 전해진 뒤 지난10일 하루동안 8억원이 인출됐다고 대구본점 직원은 밝혔다. 이에 따라 11일부터 중도해지는 받지않고 만기 투자금만 지급했으나 유동성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14일 영업을 중단했다.

▲고객들의 모럴 해저드

금융감독원은 지난4월 사설 파이낸스사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파이낸스사에 대한 투자위험을 여러차례 경고했고 언론에도 홍보했다. 금감원은 사설 파이낸스사 대주주 대부분이 사채업자 출신이고 자본금도 5억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대구시가 조사한 지역 파이낸스사도 52개중 36개사가 자본금이 1억원 이하였다. 또 조사대상 41개 파이낸스사가 98년중 88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예금자 보호대상 금융기관이 아닌 상법상의 회사에 불과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사설 파이낸스사 고객들은 이런 점을 알면서도 고수익 보장 유혹에 넘어갔다. 14일오후 청구파이낸스 대구본점에 몰려온 상당수 고객들도 예금보호대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50대의 한 남자고객은 "예금보호대상은 아니나 투자자보호를 위해 파이낸스협회가 모으고 있다던 적립금은 어디 있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다른 일부 고객들은 금융당국을 원망했다. 사설 파이낸스사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었지 않았느냐는 것. 40대 여자고객은 금융감독원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청구파이낸스 고객들은 책임자급 직원들이 모두 잠적해버려 하소연이 통하지 않자, 채권단 구성을 협의하기로 했으나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방치

금융감독원은 실태조사까지 펼쳐 사설 파이낸스사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투자위험만 경고했지 감독대상 '금융기관'이 아니란 이유로 파이낸스사의 불.탈법을 눈감아왔다. 지난4월 사설 파이낸스사에 대한 단속강화와 함께 규제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애꿎은 서민 피해자만 불어났다. 청구파이낸스 대구지역 고객만 수천명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사설 파이낸스사들이 제도권 편입을 요구했으나 금융당국은 부실 파이낸스사의 뒤처리 감당을 우려, 외면해버렸다. 파이낸스사가 제도권 금융기관이 퇴출된 틈을 타 생겨난 '사생아'이긴 하나 양성화해 육성시켜야 한다는 지적에 금융감독당국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曺永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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