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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응급조치 못하는 병원 응급실

지난달 휴일 나들이에 나섰다가 딸(3)의 어깨뼈가 탈골돼 경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홍모(31)씨. 치료받은 딸이 밤새 울며 보채자 이튿날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아연실색했다. 치료받은 어깨뼈가 여전히 빠져 있었던 것. 그는 전날 응급실에서 X선촬영까지 하고 의사에게"이상없다"는 답변까지 들었던 터였다. 홍씨는"목에 생선가시가 걸려 찾아온 또다른 아이를 당직의사가 휴일이라 치료기구가 없다며 돌려보내는 그 병원에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부실한 진료는 크고 작은 병원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5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응급실 간호사. "환자들이 들이닥쳐도 레지던트(전공의)는 찾아볼 수 없고 인턴(수련의)들이 대부분 치료를 맡는게 현실이죠. 교통사고로 얼굴을 다쳤다면 성형외과 전공의가 치료해야 하지만 인턴들이 대신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흰 가운만 걸쳐도 의사로 아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응급실의 속내를 들여다 보기란 무척 어렵다.

매일신문 기획취재팀이 최근 2주간 대구시내 종합병원 응급실 운영실태를 살핀 결과, 시설 확대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고 있었다. 4일 새벽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50대 남자. 아들의 목이 아파 응급실을 찾은 이 남자는"어젯밤 몇몇 환자들이'좀 봐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의료진들이 유독 저명인사로 보이는 한 환자에게만 장시간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밤중에 응급환자가 종합병원을 찾아도 전문의의 치료를 제때 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위급하거나 VIP가 아니면 전문의를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게 병원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응급실 근무경력이 있는 모병원 노조 관계자의 얘기. 병원간 응급의료전달체계 미비,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상습 이용 등 고질적 병폐도 여전했다.

지난 1일 밤부터 11일 오후까지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중 위급환자와 다른 병원에서 이송돼온 중환자 몇몇을 제외하곤 상당수가 의식이 또렷한 상태로 응급실로 들어갔다. 환자분류실이 마련돼 있었지만 비응급환자로 분류돼 2차진료기관으로 이송되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이들 응급실은 밤낮없이 꽉꽉 들어찼지만 병상의'주인'중 상당수는 빠른 병실 입원을 노리고 며칠씩 대기중인 여유있는(?) 환자들이었다. 응급한 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예비병상은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90%가량이 경증(輕症) 환자예요. 사정이 이러니 의사들도 진료에 성의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만일 대형사고라도 터져 부상자가 쏟아지면 병원에서 적시에 치료받을 기회를 얻기 힘들지 모릅니다"응급실 관계자의 말. 아무 환자나 응급실로 받아들이는 병원들의 유치경쟁과 병실확보를 노려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사이에서 서비스의 질은 예전과 다름없이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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