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기쁨과 평화, 행복만으로 가득하다면 '불안과 절망, 죽음과 슬픔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작품 따위는 한 번 뒤돌아볼 가치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쁨보다 슬픔이, 행복보다 절망과 고통이 늘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음산하게 끈적거리는 뭉크의 작품은 충격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런 뭉크의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에 대한 묘사.
아름다움, 순결 혹은 관능의 대상이었던 다른 작가들의 작품속 여인과 달리 그의 작품에서 여인들은 거의 '흡혈귀' 수준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애정을 흠뻑 빨아들인 뒤 슬픔만 안겨주고 훌쩍 떠나버리는....
캔버스 위에는 찌꺼기처럼 남은 사랑과 증오, 안타까움이 뒤섞여 나타나곤 하는데 그 배경에는 그의 일생에 걸쳐 진행된 네차례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으로 뭉크에게 좌절을 안겨준 사랑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누이.
어머니 라우라는 뭉크가 다섯 살 되던 해, 한 살 위 누이인 소피에는 열네살 무렵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가족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죽음의 가혹함, 죽음이 살아 남은 자들에게 주는 무게는 뭉크의 예술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첫사랑 상대인 세 살 연상의 유부녀 헤이베르그와의 관계는 뭉크에게 달착지근한 설렘을 줬지만 연인의 끝모를 자유분방함은 그를 의심과 질투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결국 뭉크는 여자의 아름다움 뒤에 '메두사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월광' '여름밤'과 같은 작품을 남긴 채 상처뿐인 6년간의 연애를 마감했다.
베를린의 예술인들이 자주 찾던 술집 '검은 돼지'에서 시작된 사랑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 술집을 드나들던 지적인 여성 음악가 다그니 유을을 두고 러시아 소설가 프시비지예프스키와 경쟁했던 그는 다그니가 프시비지예프스키와 결혼하자 다시 한번 절망한다. 당시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 '질투'인데 밀회를 즐기는 남녀를 바라보는 왼쪽의 인물은 바로 뭉크 자신. 그의 대표작인 '마돈나'에도 다그니의 면모가 전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프시비지예프스키 역시 1896년 발표한 소설 '바다로'에서 뭉크를 질투의 상대로 묘사했다는 것.
30대 이후 정신적인 방황의 원인을 제공했던 튤라 라르슨과의 사랑은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육체적인 상처까지 남겼다. 부잣집 딸로 관능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던 튤라는 뭉크에게 결혼을 요구했고 결혼과 가족을 거부했던 그는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튤라는 집요한 여성이었다. 중병에 걸린 것처럼 꾸며 뭉크가 문병을 오게 만든 다음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했고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뭉크는 권총이 잘못 발사되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충격을 받은 뭉크는 이후 정신장애까지 일으키며 심한 고뇌와 표류의 시기로 빠져들었다. 뭉크와 튤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마라의 죽음'. 피를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은 뭉크 자신이고 서 있는 여자는 튤라를 모델로 한 것으로 사랑과 죽음 또는 여자와 죄, 죽음에 대한 뭉크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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