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정상회담 '특사'박지원 장관

야당시절부터 현재까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분신' 겸 '입'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핵심측근이었으며 이번에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위한 '특사' 역할까지 함으로써 새삼 김 대통령의 신임을 확인했다.

김 대통령이 박 장관의 강력한 16대 총선 출마 의욕을 꺾고 정부에 남아있도록 눌러앉혔을 때부터 그에게 임기 후반기 국정을 이끌고 가기 위한 중추역할을 맡길 것으로 예상돼왔다.

박 장관은 지난달 초 김 대통령의 유럽방문때 국내에서 휴가를 얻어 북한과 본격적인 접촉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지난 98년 2월 김 대통령이 청와대공보수석이던 박 장관을 당시 정부 최고위인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금강산을 관광하게 한것도 되짚어보면 이번에 특사로 활용하기 위한 장기포석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박 장관은 야당 대변인, 집권후 청와대 공보수석과 문화관광장관 등 대외직책은 모두 대언론 홍보관계를 맡아왔지만 실제로는 김 대통령의 국정·정국운영 전반에서 막전막후의 '리베로' 역할을 해왔다.

그는 지난 92년 민주당 전국구로 정계에 진출한 뒤 4년간이나 최장수 야당 대변인을 맡아 순발력이 돋보이는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여야로부터 '명대변인' 평가를 들었다.

야당시절은 물론 김 대통령의 집권후에도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발로 뛰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언론계를 비롯해 각계 인사를 부지런히 접촉, '안면'이 넓으며 정국 대응방법과 논리를 찾아내는 능력과 역할로 정평이 났다.

지난 70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 72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8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가발공장 등의 사업으로 자수성가, 뉴욕한인회장,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장 등을 지내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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