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4·19여 영원하라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또 봄을 생각하면 4월이 생각난다. T.S 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4월은 용기와 희망을 준 위대한 달이며, 자연의 섭리에 보더라도 생동력 있는 달인 것이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주권자인 민중이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한 자유는 구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자유는 민주주의 제도에서만 최선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20년전 4·19가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 발달사에 4·19는 위대한 역사의 서장이며 민중 의지의 표현이다. 이 민중 의지의 표현을 일부 사람들은 혁명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의거로 보아왔다.

4·19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제1공화국의 반민주적 요소를 부정하고 지양하여 민주주의적 제 자유와 생존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로의 변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자유의 방종과 무질서, 안보위협이라는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명분을 주어 5·16혁명이 일어나 4·19 체제의 의한 민주혁명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 민주혁명의 이념이나 의의는 맥맥히 역사에 공헌한 것이다. 따라서 이 혁명의 주도세력이 학생이기 때문에 혁명이 아니고 의거라고 하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4·19혁명을 의거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민중의 참뜻과 의의를 극소화 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시대착오적 사고임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면 4·19 당시의 우리나라 학생의 역사적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일제시 학생운동은 독립, 반식민, 반제국주의 운동의 저항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해방후 운동방향은 반공 반독제 민주운동으로서 학생운동 방향을, 저항에서 민주주의에 의한 복지국가 건설로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4·19 당시의 학생들은 자유당의 부정선거와 부정부패의 상황에 처하여 민중을 대변하여 행동한 것이며, 학생은 주어진 역사적 사명에 충실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날이 있은지 2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금 역사의 매락을 살피고 나의 행동과 사고가 민주 역사발전에 역행하고 있는지를 자성해 봄이 마땅하리라 믿는다.

4·19는 영원한 생명을 지닐지어라.

김한수(63·전 교사·구 대구대 4년 재학시 4·19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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