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이 말은 구권(舊券) 화폐 사기극 관련혐의로 붙들린 장영자(張玲子.56)여인에 꼭 들어맞는 말인것만 같다. 학생 시절 해맑고 청초한 미모로 S여대 메이퀸까지 올랐던 장여인의 일생은 고운 얼굴과는 걸맞지 않게 금융 사기와 이에 따른 옥살이의 되풀이로 점철, 기구한 인생 역정을 보인다.
장여인은 82년 우리나라 금융사상 최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기록된 '이.장(李.張)사건'의 주역으로 남편 이철희(중앙정보부차장과 국회의원 역임)씨와 함께 구속, 15년형을 받았다. 장씨는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대가로 지원자금의 2~9배짜리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6천400억원을 유통시켜 1천400억원을 사취, '큰 손'이란 별명까지 얻었었다. 이 사건으로 전 전대통령 처삼촌과 은행장 2명, 공영토건, 일신제강사장 등 32명이 구속됐었던 것.
10년가까이 형을 살다 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씨는 94년1월 출소 1년10개월만에 또다시 사기혐의로 4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장씨 소유의 부동산이 가압류로 묶여있어 자금난에 시달리자 이번에는 사위가 경영하던 회사 어음에 배서한후 부도를 낸것이다. 장씨가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자 남편 이철희씨는 교도소 근처로 방을 옮기고 매일 면회, 옥바라지를 했다.
이씨가 면회를 못한 날은 교도소 담에 기대앉아 하루종일 하늘만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당시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잔잔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황혼의 부부에게 자비를 베풀어 여생을 비참하지 않게 마치게 해달라"고 당시 법무장관에게 탄원서를 여러번 제출,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98년 8.15특사로 풀려난 장씨는 출소 2년이 채 안돼 이번에는 구권사기극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 법의 심판을 받게된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 구김살 없이 자란 그녀가 이처럼 계속된 금융사기로 자신은 물론 남편과 아들, 사위까지 옥고를 치르게하며 무리를 저질러온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아직도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재력가로 평가되는 그녀가 계속 파문을 일으키고있는 밑바닥에는 장여인의 지칠줄 모르는 자기 과시욕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 가능할것 같다. 이에 곁들여 아직도 뒷배경을 잘만 잡으면 한탕할 수 있다는 한탕주의자들이 득실대는 우리 사회풍토가 장여인의 허욕을 더욱 부풀리고 있음을 지적지 않을수 없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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