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2위기설 금융개혁이 과제다

"증권사, 투신사 어디 하나 믿고 맡길 데가 있나요? 확정금리 주는 은행으로 옮겼어요" 지난 주 한 은행 창구에서 만난 50대 아주머니는 투신사에 들었던 공사채형 수익증권 1천만원을 정기예금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은행보다는 안전한 은행이 나을 것 같아서…" 자동차부품업체를 경영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거래은행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귀띔했다.

"고객마다 돈 빼러왔다는 이들뿐입니다. 자금이 단기 부동화하는 게 눈에 선해요" 투신사 모 간부는 올들어 영업하기 고달프다고 하소연했다.

금융이 불안하다. 개인은 개인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금융기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구에 찬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금융기관은 더 힘들다. 지금도 이런 형편인데 내년 예금자보호한도가 축소되면 어떻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까지 해야된다IMF 관리체제 졸업 얘기가 나돈 게 엊그제인데 급작스레 경제위기설이 번지는 가장 큰 이유는 취약한 금융시스템 때문이다.

위기의 금융은 각종 지표로도 잘 나타난다.

종합주가지수는 폭락을 거듭하면서 22일에는 700선이 무너져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형주 10개를 제외하면 외환위기 직후인 97년말보다 더 하락한 수준이다. 코스닥지수도 1년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원-달러 환율은 연일 상승하면서 22일 82일만에 최고치로 올라갔고 장기금리는 그동안 0.01~0.04%포인트 대에서 움직였던 것에서 벗어나 19일 0.09%포인트 오르는 등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단기외채는 3월말 현재 434억달러를 기록, 98년 3월말 이후 처음으로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신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채권 규모는 66조원으로 기존 분류에 비해 15조원 이상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지난해 17개 일반은행들이 자산을 굴려 얻은 이익(ROA)에서 -1.31%, 자기자본을 굴려 얻은 이익(ROE)에서 -23.13%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보였고 3개월이상 연체된 무수익여신은 전년보다 오히려 6조원 늘어났다고 밝혔다. 금융권 부실여신은 워크아웃 여신을 제외하고라도 64조원으로 쌓여있다.

외국의 반응도 냉담해지고 있다.

미국 투자기관인 모건스탠리증권은 19일 한국에 대한 투자전략을 중립에서 비중축소로 하향했으며 은행전문 신용평가기관인 미국 톰슨 뱅크워치는 조흥, 한빛, 외환은행 등 공적 자금이 투입된 3개은행의 원화표시 단기채권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조정했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S&P는 22일, 무디스는 15일 각각 기업 구조조정이 형식적이고 제2금융권의 취약성이 지속되면서 은행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인 주식 순매수 규모는 1월 1조4천억원에서 4월말 현재 마이너스 2천억원으로 급감한 상태다.

시장의 반응은 자금이동이란 움직임으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투신사, 증권사, 제2금융권은 철저히 외면당하는 반면 자금이 은행 저축성예금으로 집결되고 있다. 올들어 4월말 현재 은행 저축성예금은 40조원 증가한 반면 투신사 공사채형 수익증권에선 38조원이나 빠져나갔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주 터져나온 새한그룹 워크아웃 사태는 금융권에 3천억원의 부담을 발생시킬 계산이며 7월 시행될 채권시가평가제 역시 당장의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처럼 금융부실이 오히려 심화되는 양상마저 띠는 것은 금융구조조정이 지연된 데 따른 것이다. 은행 합병작업은 말만 무성할 뿐이며 제2금융권 구조조정은 공개논의조차 드물고 투신사 구조조정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대구은행의 한 고급간부는 "일반이 보는 정도로 금융불안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위기설이 확산되면 현실화되는 게 금융의 속성이므로 일반의 신뢰를 끌어낼 수 있게끔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개혁이 선행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李相勳기자 azzz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