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워크피아-병원 비정규직 충원 질 저하 불러

"일은 똑같이 하는데 월급은 절반,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제대로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종합병원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대거 충원하고 있으나 근로환경이 열악한데다 교육훈련도 뒤따르지 않아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의료사고까지 초래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료전문가들은 종합병원 인력수급방식의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해 전국 148개 병원을 대상으로 '98년 의료인력수급현황'을 조사한 결과 98개 병원이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등을 전 해에 비해 2천여명이나 줄인 대신 비정규직 1천여명을 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같은 비정규직 충원은 규모가 큰 종합병원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현황과 실태

대구·경북지역 종합병원의 경우 비정규직 인원이 IMF 이후 해마다 늘어 5월현재 병원마다 적게는 100명 안팎, 많게는 400여명에 이른다.

경북대병원은 정규직이 940여명이며 임시·계약·촉탁·용역·아르바이트 형식의 비정규직은 모두 400여명이고 영남대병원의 경우 정규직 1천100여명, 비정규직 220여명이다. 또 동산, 파티마, 가톨릭 병원이 각각 250, 150, 90여명씩의 비정규직을 두고 있으며 경주와 포항의 동국대의료원은 50여명의 비정규직을 두고 있다.이같은 비정규직 가운데 간호조무사 등 진료보조자와 간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통상 정규직 간호사 등이 거치는 2, 3개월간의 교육훈련없이 곧바로 병동 등에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비정규직 진료보조자와 간호사가 모두 105명이나 차지하고 있으며 중환자실에 투입되는 3명씩의 간호사 중 2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경우 △낮은 임금과 근로조건 △고용불안 △과중한 업무와 업무미숙 등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게 병원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보면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수준인데다 청원휴가, 상여금, 명절수당이 거의 없는 열악한 상황이며 병원측 눈치를 보느라 노조가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지역 모종합병원은 비정규직 간호조무사 6명에게 연월차휴가를 주지 않다가 노동부 특별감사에 지적됐으나 이후 연월차휴가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의 계약기간도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천차만별인데다 불이익을 당했을때 권익을 대변해줄 마땅한 기구도 없어 항상 고용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8년 4월 방사선취급 자격을 가진 모종합병원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는 계약기간중에 해고됐다 노동청에 고발한 뒤에야 복직됐다.

대다수 종합병원들이 97년말 IMF이후 인력을 대거 줄인 뒤 비정규직을 충원했으나 충원율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환자수는 해마나 늘어나는 형편이어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모병원의 경우 지난 98년 외래환자가 2천명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3천500~4천명으로 3년사이 2배가량 늘었으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모두 53명으로 더이상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비정규직 신규인력들은 교육·훈련이나 업무를 제대로 배울시간도 없이 병동 등에 배치되고 있으며 외래의 경우 환자를 진료하느라 점심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일본 등 의료선진국들은 간호사 1명이 평균 5명의 환자를 돌보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그보다 3배가 넘는 평균 19.5명이며 대구지역 종합병원들은 심지어 간호사 1명당 환자를 20~25명까지 돌보고 있는 형편을 볼때 근로여건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열악한 근로환경과 업무미숙으로 인해 심지어 의료사고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했다.

의사처방전에 대한 확인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항암치료환자에게 엉뚱한 약물을 처치하거나 근육주사 대신 정맥주사를 투약하는가 하면 수혈환자에게 엉뚱한 혈액을 수혈, 환자들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대책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대구경북본부는 지역 종합병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 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근로환경 개선 등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산업노조에 따르면 지난 98년 이후 각 종합병원들은 응급의료센터를 신축하고 입원실 및 응급실을 늘리고 의료장비 등 시설물은 크게 확장했으나 이에 따른 인력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설과 장비가 확충된 만큼 의료인력도 충분히 확보해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또 병원측이 인건비절감에만 매달려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확보에 치중하는 바람에 각종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으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충분한 교육·훈련을 통해 업무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시간외근무 축소와 노동시간 단축, 생리휴가, 임금현실화 등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의료산업노조 관계자는 "최근 빈번한 의료사고는 개인적 실수로 돌리기보다는 결국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며 "병원측이 경영흑자에만 매달리지 말고 의료서비스를 개선하기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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