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학력 저하 이대로 좋은가

고교 1.2년생들의 학력이 크게 떨어져 새 대입제도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고교 무시험 진학, 2002학년도부터는 공부를 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인식, 고교들의 '성적 부풀리기'로 인한 쉬운 시험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서울의 한 중상위 고교가 올 1학기 초 1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른 결과 평균 점수가 30점으로 2년만에 무려 20점이나 낮아졌다. 또 학력평가기관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최근 전국 중위권인 한 고교 2학년생을 이 학교의 현재 3학년이 지난해 치른 것과 같은 모의대학수능시험지(400점 만점)로 평가한 결과 인문계는 평균 202.3점, 자연계는 191.4점이 나와 27.1점, 34.5점이나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학력 저하는 전국 대부분의 고교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으며, 점수차가 이렇게 큰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평준화 지역의 성적이 고교입시 제도가 있는 비평준화 지역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2002년부터 시행될 대학입시 무시험 제도, 고입 학력고사 폐지 등과 깊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시험 대입전형 대상자인 고교 1.2년생들은 지금 전에 없던 수행평가 방식으로 성적평가를 받고 있다. 지필고사에 의한 교과목 시험성적만을 학업성취도 평가의 절대기준으로 하던 데서 특기.재능.리더십.봉사정신 등 다양한 인성을 평가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그만큼 교과목 성적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성적 평가방식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어 마음만 먹으면 학생의 성적을 얼마든지 올려 줄 수 있게 돼 있다. 대입전형에 유리하게 해 주려는 학교 당국의 성적 부풀리기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 서울에서는 시험이 너무 어렵게 출제됐다는 학생들의 불평 때문에 쉬운 문제로 재시험을 치른 학교가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까지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 제도와 풍토가 빚은 새로운 현상에 다름 아니다.

무시험 대입 제도와 고교 선발고사 폐지가 학업의 중요성을 떨어뜨려 '교실 붕괴'라는 반교육적 현상을 부르고, 날로 그 사정이 심각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인력의 질마저 떨어진다면 우리의 내일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조장하는 교육정책이 가져온 교육의 질적 저하를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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