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과제 3인 좌담회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55년의 불신과 반목을 일시에 제거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특히 두 정상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평화공존과 통일기반을 다진 것은 민족사적 전기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이후 보인 우리사회의 태도와 변화는 회담성과와 더불어 되짚어 볼 대목이 많다. 매일신문은 창간 54주년을 맞아 이상연 전 안기부장, 소설가 이문열씨, 이종석 세종연구소 남북교류실장 등을 초청, '정상회담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이상연=남북은 분단 55년 동안 남북기본 합의서가 나오는 등 그 과정에서 많은 회담과 합의를 했지만 곧 갈등을 지속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그러나 양 정상의 만남은 양측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데다 평화정착의 기초를 놓았다는 데 의미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문열=양 정상의 회담이 역사적 계승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을 부자승계한 북한은 몰라도 남한정권은 그 동안 정권교체마다 전 정권과 단절을 선언해 이번 정상회담이 그 동안의 회담과 역사적 계승관계가 있느냐는 데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종석=이번 정상회담은 당연히 역사적 계승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6·15합의는 과거에 앞서 과거에 합의했던 내용을 남북이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상연=6·15기본 합의서는 근본적으로 6공시절 남북기본합의서와 맥락을 같이해 충분히 역사적 계승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종석=6공의 한민족 통일방안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방안과 유사하다. 남북연합 다음 단계는 다르지만 남북연합까지는 6공때 만든 한민족 통일 방안과 같다. 임동원 국정원장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통일방안을 만든 사람이다.

▲이문열=이번 정상회담 기간동안 특히 매스컴의 호들갑에 짜증이 났다. 역사성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지 않고 정권의 한건주의로 흐르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종석=김정일이 이번 정상회담에 나온 배경을 두고 여러 말이 많은데 사실 김정일은 작년부터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정감을 돼 찾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북한사정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나빠졌다는 의미도 있다.

▲이문열=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에 김정일이 응한 것은 작년부터 내부사정이 나아진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일이 취한 일련의 행동이 제스처냐 본래 모습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이종석=김정일에 대해선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봐야하지만 지도자로서 자질도 있다고 본다. 부정 일변도로 보다가 또다른 면을 보니 김정일 신드롬이라는 역작용을 불러왔다.

▲이상연=국가정보를 관리한 입장에서 김정일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김정일은 70년 초반부터 조직과 선전·선동을 맡아서 체제유지와 목표달성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진면목을 알기까진 거리를 두고 관찰해 봐야 할 것이다. ▲이문열=정상회담을 통해 지식인들이 북에 완전히 순치됐다는 느낌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특히 일부 매스컴이 취재거부당한 보도를 자기검열에 의해 제 때 하지 않는 북한 눈치보기 태도는 심각하다고 본다.

▲이종석=우리가 북한에 큰 차이로 앞서고 있는데 여전히 북한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층이 문제다. 내가 볼 때 북한체제에 가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상연=회담자세를 놓고 정부도 어려움이 있지만 저자세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함께 국군포로, 납북어부문제 등도 당연히 거론돼야 한다. 또, 6·25와 관련해 북한의 공식사과를 받는 것도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한다.▲이문열=나는 이산가족 중에 한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 동안 나의 부친상봉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부친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산가족문제는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이종석=이산가족문제를 보면 이번 8·15교환 방문단은 첫 단계이고 면회소 설치가 제대로 되야 한다.

▲이상연=이산가족 문제에 너무 흥분해선 안된다. 7·4성명후 이산가족 만남이 중단된 것은 북측에 문제가 있었다.

▲이종석=99년부터 탈북자가 수십명 나오면서 북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산가족을 통한 경제적 접근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상연=이산가족 상봉의 지속성과 정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쪽 체제 관리상 상징적으로 하겠지만 남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이종석=그렇지만 면회소 설치는 중요하다. 최근에 다시 판문점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지만 금강산은 숙박이 가능한 점 때문에 이산가족 면회 장소로 좋다고 본다. 경협문제로 넘어가서 경의선 연결복선화 문제는 남북의 실질적인 협력관계 설정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이상연=경협문제는 받는 사람의 개방여부가 관건이다. 받을 그릇이 준비 안된 상황 속에서 물만 붓는다고 해서 경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종석=북한도 우리가 주는 방식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서로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김정일은 작년에 전자공업성이란 부서를 만들 정도로 컴퓨터 산업에 관심이 많다. 내심으론 삼성전자가 가장 들어오기를 고대하는 듯하다

▲이상연=과거 김달현 등 북한경제관료를 만난 경험에 의하면 남대문 시장에 같은 물건의 점포가 몰려 있는 원인을 모르더라. 시장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의식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문열=정치논리에 의해 허세를 부려서는 대단히 위험하다.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다 박는 식은 곤란하다.

▲이종석=이익 없는 대북경협은 대단히 위험하다. 현 단계에서 북한 진출 우선 순위로 꼽히는 것은 대구 섬유와 부산 신발이다.

▲이상연=정상회담은 한반도 주변사항과 연계되어 있다. 북한의 자주논리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다면 남북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자주라는 용어에 주목하고 있다.

▲이종석=공동선언에서 당사자 원칙을 강조하고 나서니 미국입장에선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중국은 남북이 주도권을 복원하면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빼려고 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번 회담을 우려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 김용순이 미국에 가서 얘기한 한반도에 미군주둔을 반대 안한다는 말이 김정일 입에서도 나왔기 때문이다.

▲이상연=한미공조를 위해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독일 통일 당시 나토 군이 주둔해 있었다.

▲이종석=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외부에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미국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이문열=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교해 보며 군대가 강한 스파르타가 전쟁에서 졌다는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 비록 우위에 있다고 모든 것이 승리한다고 보면 안된다.

▲이종석=이번 정상회담 후속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관심사다. 내가 보기에는 내년까지는 올 것이다. 온다면 평화와 군축문제가 더 깊이 논의될 것이다.

▲이상연=김 위원장의 답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공식연설 한번도 없는 김정일이 과연 서울에 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공식연설을 하고 넥타이를 맨 양복을 입고 나올 때 북한은 진정으로 개방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문열=김정일이 오더라도 매스컴이 이번처럼 호들갑을 안 떨었으면 좋겠다.

▲이종석=남북문제를 합리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북한 금창리 사찰과 정상회담을 보더라도 절대 안된다는 것이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문열=통일의 중요 변수는 김정일도 아닌 남한의 대중, 북한의 인민이다.

▲이상연=바꿔 말하면 권력구조나 파워만 생각했지 시민사회의 역량을 모르는 것이다. 북한사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문열=함경도에 살고 있는 친척을 만난 적이 있는데 남한에 대해서 알고 있더라. 데모에 대해 "우리는 굶고 고통스러워도 가만히 있는데 남조선 괴뢰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저렇게 들고 일어날까"라고 말했다.

▲이종석=북한 사회는 봉건적 형태가 남아 있지만 시멘트 구조물이 겉은 단단하지만 안으론 부서지는 것 같이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이문열=남북이 평화정착을 위해선 사회적·문화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며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교류도 활발해져야 한다.

▲이종석=국가 보안법 문제는 남한의 민주화, 인권에 관한 문제다. 우리 사회도 이젠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갈 정도로 건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상연=보안법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또한 노동당 규약 개정 등 상호주의를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

▲이종석=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근본적으로 통일에 대한 것보단 일단 평화 정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화정착 기간만도 10~20년 걸릴 것이다. ▲이상연=남북대화는 통일부나 국정원이 아닌 대통령 직속 남북회담 협상 대표단을 구성해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남북대화를 임하는 정부의 태도는 현재보다 조금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문열=통일을 얘기한다면 남북간 합의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막연하게 회담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 거듭 얘기하지만 우리사회에 공감대 형성과 정치적 이용배제가 특히 중요하다. 민족의 역사적 대과업이라는 관점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초석을 놓기를 기대한다. -정리·李相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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